“우리가 개도 아니고..” 아버지에게 비참하게 버려져야만 했던 가수 주현미의 아픈 기억들

가수 주현미가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버려졌다’고 고백해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안겨주고 있는데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며 아버지에게 갖고 있는 아픈 기억을 털어놨습니다. 그녀가 고백하길 “인생 총량의 법칙이라는 게 있는데 나는 어릴 때 말 그대로 개고생을 했다. 어떨때 보면 그 시간들이 그때의 아픔들이 지금 노래할 때 묻어나지 않나 싶다.” “한창 부모님한테 떼도 쓰고 공부에 집중해야 할 사춘기 시절에 나는 동생들을 돌봐야 했고 생활비 걱정을 해야 했다. 심지어 그때 우리 아빠가 한국에서 살기 힘들다면서 우리를 남겨두고 미국으로 가버렸는데 그래서 어렸을 … Read more

“내가 많이 모자랐다” 전원일기 시절 김혜정과 다른 배우들의 생계를 막을뻔한 김수미의 고백

연예계에 한때 커다란 갈등을 겪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전원일기>의 시어머니와 며느리로 등장했던 김수미씨와 김혜정씨입니다.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무려 22년 2개월 동안 방송된 우리나라 최장수 드라마 <전원일기>는 최불암, 김혜자, 김수미, 김용건, 고두심, 유인촌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들이 완벽에 가까운 생활 연기를 보여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었습니다. 전원일기를 기억하시는분들은 양촌리 풍경을 떠올리면 최불암씨가 가장인 김회장님 댁이 있었고 그 이웃에는 복길이네가 살았습니다. 이 복길이의 아버지는 박은수씨가 연기한 일용이었고 일용이의 처는 김혜정씨가 맡았습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일용 엄니로 열연한 배우가 바로 김수미씨입니다. 김수미씨는 무려 30대 초반부터 일용 엄니 역할을 맡아 백발에 주름 분장을 했는데 처음 일용 엄니 역할을 제안받은 김수미씨는 ‘동갑인 고두심은 꽃다운 세대 여인인데 서구적인 미인인 내가 할머니 역할이라니’라며 대본을 던져버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는 일이 고팠기에 마음을 다잡고 연기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데 그 결과는 엄청난 반전을 일으켰습니다. 일용 엄니 역할을 통해 김수미씨는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되었죠. 당시만 해도 할머니라고 하면 무기력한 모습을 떠올리기 쉬웠지만 김수미씨는 신명나면서도 에너지 넘치는 할머니 캐릭터를 창조해냈습니다. 특히 일용 엄니의 독특한 목소리는 개그맨들의 단골 성대모사 대상이 될 정도로 화제였습니다. 한편 드라마 속에서 일용 엄니 김수미씨와 며느리 복길 엄마 김혜정씨는 많은 고부 갈등을 겪었습니다. 속에 있는 말을 참지 못하는 기분파 할머니 일용 엄니와 무뚝뚝한 며느리 복길 엄마는 자주 부딪혔는데 특히 딸만 낳은 복길 엄마에게 일용 엄니는 은근 스트레스를 주며 들들 볶았습니다. 마치 실제 상황처럼 착각이 들 정도로 괴롭히는 시어머니 김수미씨와 그 며느리 김혜정씨의 열연은 참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전해진 바에 … Read more

“이젠 꽃길만 걸으세요..” 원치않던 강제 결혼생활로 오열하는 방은희의 힘든 고백이 들려왔다

1988년 영화 <사랑의 낙서>로 데뷔한 방은희는 많은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습니다. 하지만 항상 밝은 모습만 보여줬던 그녀에겐 차마 밝힐 수 없는 안타까운 모습도 있었는데 아무것도 모른채 강제된 결혼 생활을 해야 했으며 늘 두려움에 떨며 살아야 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두 번이나 이혼하게 됐는데 방은희는 <동치미>에 출연해 재혼한 남편과 이혼한 충격적인 이유를 밝혔습니다. 1967년생 방은희는 매우 보수적인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기집애가’라는 말을 달고 살았으며 유독 딸인 방은희에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밀었습니다. 방은이의 시력이 나빠져 안경을 써야 할 상황에도 아버지는 ‘여자는 안경을 써도 재수가 없어’라는 가부장적인 말을 했다에 자존감을 떨어뜨렸습니다. 이에 방은이는 어릴 때부터 심한 속앓이는 했습니다. “죽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못 나가게 했어요. 집에 가둬뒀어요. 그래서 여자인 것이 싫었어요.” 방은이는 연기하고 싶다고 했을 때도 거센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그녀는 어느날 연극 <님의 침묵> 무대에 선 이해영을 보고 연기의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이해영은 1인 다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냈고 그를 본 방은희는 가슴 속에서 꿈틀거리는 열정을 발견했습니다. 이후 그녀는 아버지에게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지만 외출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반응은 과격했습니다. “연극 배우를 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러니까 정말 다 때려 부으면서 저를 쫓아내시더라고요. 호적에서 파버린다고 하고 많이 반대하셨어요.” 강경한 아버지의 태도에 큰 상처를 받은 방은희는 나중에 자신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게 된다면 절대 아버지처럼 자식을 키우지 않으리라 다짐했습니다. “만약에 내가 아이를 낳는다면 딸이든 아들이든 자유롭게 키워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아들을 낳았을 때 어릴 때부터 … Read more

‘어떻게 그런일이..’ 믿기 힘든 배신으로 모든 재산을 잃고 스스로 정신병원을 찾아갈 수 밖에 없었던 가수 유미리 고백이 들려왔다

강변 가요제 10대 가수, 가요제 상을 휩쓴 버클리 음대 출신 유미리는 대단한 재원이었습니다. 또한 그녀의 노래 <젊음의 노트>는 대한민국 응원가로 쓰일 만큼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참 넉넉하고 평탄한 인생을 살았을것 같지만 그녀는 누구보다도 파란만장하게 굴곡진 길을 걸어왔는데 전 재산을 잃고 생활고와 극심한 우울증으로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했습니다. 1965년생 유미리는 초등학교 2학년 재학 중 가족을 따라 미국에 이민을가 미국 보스턴의 버클리 음악대학교 실용음악학과를 졸업한 유학파입니다. 그녀는 85년 미주 교포 학생 가요제에서 1위를 차지했고 이후 버클리 음대 2학년 재학중이던 86년 남이섬에서 열린 제7회 mbc <강변가요제>에 전미대표로 참가해 <젊음의 노트>로 대상을 받았습니다. 또 같은해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86년 10대 가수이자 신인상을 받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젊음의 노트>는 세련된 멜로디를 가진 곡으로 155cm라는 작은 키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파워풀했던 그녀의 반전 성량은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당시 유미리는 직선적인 보컬과 울림통이 큰 가창력 때문에 이선희와도 견주어졌는데 그녀는 록적인 창법으로 매번 무대를 꽉 채웠습니다. 특히 많은 젊은이들은 당시 정부의 답답한 상황을 투영한 노래 가사에 공감했고 시원스럽게 뻗어나가는 유미리의 음색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습니다. <젊음의 노트>는 중고등학교 운동회에서 응원가로도 자주 불렸고 87년에는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좋아하는 노래 9위에도 뽑혔습니다. 대한민국의 응원가로 쓰일 만큼 사랑을 받은 곡 덕분에 유미리 역시 유명세를 떨쳤는데 아쉽게도 이후 앨범들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유미리는 정규 1집 <가슴에 기대어 한번 더> 2집 <첫인상> 등으로 활동했으며 미국으로 돌아가 … Read more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여요..” 연우에 대한 말못할 고민을 오은영 박사에게 털어놓은 장윤정의 안타까운 속마음

최근 장윤정이 아들 연우에 대한 고민을 밝혀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는데 연우는 아이라곤 믿어지지 않는 말을 하며 엄마 장윤정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가수로서는 물론이고 예능인으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장윤정은 <신비한 레코드샵> 게스트로 출연해 오은영 박사에게 아들 연우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습니다. “연우가 ‘엄마 조금 더 있으면 제가 힘들어질 것 같은데요’라고 감정 예고를 해요.” 이 말을 들은 오은영은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언제나 부모는 아이의 감정을 말로 알려주고 아이가 그 모습을 보고 아말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해요. 연우의 행동은 가장 건강한 태도입니다”라며 걱정을 일축했습니다. 오은영 박사의 말을 들은 장윤정은 연우가 헷갈릴 만한 훈육 태도에 대해서도 고백했습니다. “연우가 어릴 때 밥 먹는걸 애먹었어요. 아빠는 끝까지 다 먹어야 해라고 했다면 저는 연우가 최선을 다해서 먹었고 배부르면 남겨도 되라고 했어요.” “엄마, 아빠가 생각이 다르니 헷갈렸을 것 같아요. 그런데 연우가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배부릅니다.’라고 하더라고요” 오은영은 장윤정의 여러 고민을 잘 들어주면서 육아는 항상 힘든 것이라며 그녀를 격려했는데 오은영 자신 역시 아이를 키우면서 실수를 많이 했고 매 순간 후회의 연속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아들 연우에 관한 장윤정의 고민은 이뿐만이 아니었는데 그녀는 지난 9월 한 방송에서 가슴 아픈 이야기를 꺼내며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9월 18일 방송된 mbc 예능 <물건너온 아빠들> 4회에서는 mc 장윤정, 임교진, 김나영과 외국인 아빠들이 ‘우리 아이 어린이집은 몇 살부터?’라는 고민을 두고 열띤 토론을 펼쳤습니다. 김나영은 이 주제의 첫째 신우가 씩씩하게 어린이집에 잘 적응한 일화를 들려줘 … Read more

“상상도못했죠..” 믿었던 측근에게 수십억 피해를 보고 우울증까지 왔다는 배우 이준기

예쁜남자의 타이틀을 거머쥐고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배우 이준기는 영화 <왕의 남자>에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는 재능도 많고 연기력도 뛰어나 금방 톱스타의 반열에 올랐는데 밝은 이면 뒤엔 충격적인 사건들을 겪으며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려고 했습니다. 82년 부산에서 1남1녀 중 첫째로 태어난 이준기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내성적인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훗날 자신이 배우가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원래 장래 희망은 프로그래머였는데 조용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던 이준기는 고등학교 시절 친한친구와 연극 <햄릿>을 본 후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워낙 소극적인 성격 탓에 그가 배우가 될 것이라곤 아무도 예상 못했으며 심지어 어떤 선생님은 그에게 ‘네가 배우가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라고 했습니다. 주변의 부정적인 반응에도 이준기의 마음속에는 연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져만 갔고 결국 그는 20살이 되자마자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그는 서울에 와서 부산에 있을 때부터 친분이 있던 로버트 할리를 찾아갔으며 당시 할리는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이준기는 중학생때부터 이어진 친분을 빌미로 그의 집에 더부살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오디션을 보러 다니며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기에 당구장, 호프집등의 아르바이트도 병행했습니다. 그러던 2001년 이준기는 의류 브랜드에 지면 광고모델로 데뷔하게 됩니다. 그후 2003년에는 <논스톱3>의 단역으로 출연할 수 있었고 20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영화 <호텔 비너스>에서도 배역을 따냈습니다. 그렇게 차근차근 배우의 길을 밟던 이준기는 2005년 인생을 바꿔줄 영화 <왕의 남자>에 출연하게 됩니다. 그는 한달 … Read more

“얼마나 무서웠을까..” 처녀시절 택시에 강제로 태워져 호텔로 끌려갔다는 이상해 아내 김영임의 충격적인 고백이 들려왔다

현재 sbs 부부 예능 <동상이몽2 – 너는 내 운명>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인물 중 한명인 가수 출신 배우 김윤지는 지난해 9월 자신의 sns에 자필 편지로 결혼 소식을 알렸습니다. 그녀가 동상이몽에 출연하면서 함께 주목받고 있는 스타 부부가 있는데 바로 이상해, 김영임 부부입니다. 김윤지의 남편은 사업가 최우성으로 이상해, 김영임 부부의 아들입니다.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만큼 자연스럽게 이상해, 김영임 부부의 이야기가 수면에 떠올랐는데 김영임은 이상해에게 감금을 당하며 수차례 맞은바 있습니다. 그 때문에 경찰서에 달려가 도움을 청했다는데요. 일련의 이유로 이혼까지 하려 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고 결국 김영임은 그 괴로움에 공황장애, 우울증, 안면장애까지 얻어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다고 합니다. 결혼 후 줄곧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국악인 김영임은 최근 며느리 자랑에 한창입니다. 그녀의 며느리는 한때 ns윤지라는 예명으로 가수 활동을 했던 배우 김윤지입니다.   김영임의 아들 최우성과 김윤지는 초등학생 때부터 알던 사이로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하며 집안끼리도 가깝게 지냈으며 김윤지가 가수 활동을 할때 예명도 김영임이 도움을 줬습니다. 김영임은 김윤지에게 도올을 소개해줬고 도올은 ‘새혼’이라는 뜻으로 ns윤지라는 예명을 지어줬습니다. 그리고 김윤지는 김영임과 이상해 부부를 평소 큰엄마, 큰아빠라고 부르며 믿고 따랐다는데요. 그렇게 오랜시절 가깝게 지냈던 두사람은 지난해 김윤지와 최우성의 혼인으로 가족의 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최우성 김윤지 부부는 20년 넘게 친분을 유지해오다 2019년쯤부터 서로 이성으로 보게 되었다고 알려졌습니다.   김윤지가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김영임의 집에 와서 ‘오빠한테 시집가고 싶다’고 울며 결혼 허락을 받았다고 전해지는데 김영임은 두 사람이 결혼하겠다고 얘기했을때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놀랐지만 매우 기뻤습니다. 초등학교부터 알던 아이들이었는데 … Read more

“언제나 밝으셔서 몰랐어요..” 며느리도 마저 결국.. 20년간 보고싶은 손녀도 못본 박원숙의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박은숙의 같이삽니다>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배우 박원숙씨, 의리있고 정이 넘치는 모습에 방송을 통해 많은 즐거움을 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과거 세상을 향해 한권의 책을 냈는데 <열흘 운 여자가 보름을 못 울어?>라는 책으로 이미 책제목에서 말해주듯 그녀는 울일이 참 많은 인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처음으로 사랑을 알게 해준 남자와 두번의 결혼, 두번의 이혼을 하면서 평생을 후회할만큼 최악의 선택이 되었으며 설상가상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을 너무나도 허무하게 잃었습니다. 또한 하나뿐인 손녀와도 20년 동안 연락이 끊겨 울다 지쳐 실신하기를 반복해야 했던 박원숙, 그녀의 인생은 어쩌면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49년 만화가 박광현의 딸로 태어난 박원숙은 어린 시절부터 끼가 다분해 연기자를 하고 싶다는 막연한 욕구가 있었고 그래서 대학도 중앙대 연극영화과로 진학하게 됩니다. 그렇게 영극영화과에 입학 후 연극에 푹 빠져 있던 그녀가 대학교 2학년시절  첫번째 남편을 만나게 됩니다. 당시 두 사람은 연극이라는 매개체로 가까워졌고 특히 연극 소품을 구하기 위해 남대문, 동대문, 세운상가 등을 돌아다니며 자연스레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러다 하루는 두사람이 연극소품을 사고 차를 마시며 시간 가는줄 모르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만 통행금지에 시간이 오고 말았는데요. 그렇게 두 사람은 경찰서 철창 신세를 지지 않기 위해 여관으로 향해야만 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첫번째 남편이 절대로 잠을 자지 않고 밤새 이야기만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이 깨지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설상가상 이 한번의 일로 임신까지 해버린 그녀는 양쪽 집안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후 결혼을 하게 되지만 당시 첫번째 남편이 결혼을 하자마자 군대에 입대하면서 그녀는 자연스레 독수공방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삶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연기자의 꿈은 포기할 … Read more

“얼마나 한이 많으실까..” ‘애비 잡아먹은 자식’이라며 기구한 인생을 겪어온 최백호의 안타까운 사연이 들려왔다

목소리 하나에 수많은 하모니를 가진 가수 최백호씨는 낭만가객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의 젊은시절은 낭만보다는 오히려 한이 많았습니다. 1950년 부산 기장군에서 태어났는데 최백호씨의 집안이 화제를 불어일으킨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최백호씨의 아버지 최원봉씨는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2대 국회의원을 지낸 바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아버지 최원봉씨는 최백호씨가 태어나고 생후 5개월이 됐을때 아들을 보러 오는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의 친할아버지는 어린 손주를 애비 잡아먹은 자식이라고 생각해 내쳤습니다.   아버지없이 생활이 어려운 그의 가족에게 경제적 도움을 전혀 주지 않는데 당시 그런 한이 맺혀 지금도 친가쪽 사람들과 연을 끊고 산다고 합니다. “당시 어머니는 시골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는데 어머니가 전근을 가면 어머니를 따라 여기저기 떠돌이처럼 생활을 했다.” “잦은 전학과 아버지의 부재에서 오는 외로움을 달래려 초등학교 시절부터 나무 위에 올라가 습작하던 습관이 스스로 노래를 만들게 하는데 밑거름이 된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 그림에도 재능을 보였는데 학창시절 꿈은 영화 감독이었다며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영화감독이 될 결심을 하고 모 대학의 연극 영어학과에 들어가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 Read more

‘곧 내 차례일까 두렵다’는..한손에 지팡이와 수척해진 모습으로 등장한 엄앵란의 안타까운 근황이 전해졌다

한동안 방송에서 자취를 감췄던 엄앵란씨가 자신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 같다며 두려움을 나타냈습니다. 현재 외출조차 못하는 상황이라고 하는데요. 지난 9일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 가수 현미편에 엄앵란이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현미는 이날 방송에서 오래도록 가깝게 지냈던 배우 엄앵란을 찾았습니다. 두사람은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의 이웃에 살면서 우정을 쌓았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내가 전화를 자주 해요. 개는 집에 있고 나는 활동하는데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그건 아파본 사람이나 알죠.” 현미의 말에 엄앵란의 건강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어 모습을 드러낸 엄앵란은 지팡이없이 거동조차 쉽지 않아 보였는데 현미는 엄앵란에게 “재수술했는데도 다리가 계속 아파?”라고 질문했습니다. 알고 보니 엄앵란은 유방암 투병에 관절 수술까지 겹쳐지며 …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