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아빠가 더 보고싶네요..” 어처구니없게 전 남편에게 이혼당했는데 얼마되지않아 수십년간 연락이 없었던 아들이 찾아와 꺼낸 ‘이 말’에 집안이 풍비박산나고 말았습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저는 나이 50이 넘은 지금에서야 그 말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저희 아빠와 시아버지께서는 어린 시절 옆집에 사시면서 형, 동생하며 자라온 사이셨는데 두 분은 나중에 꼭 아이들 낳으면 사돈 맺기로 약속하셨다고 했어요.

사회로 나온 두 분은 동업을 시작하셨고 동네 철물점부터 시작했던 사업은 점점 커지면서 번듯한 자동차 부품 공장이 되어 두 분은 사장님들이 되셨는데 정말 생사고락을 함께 하셨습니다.

피를 나눈 형제보다도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가족끼리도 자주 왕래하며 지냈고, 남편에게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저와 동갑이던 유진이는 미국으로 유학 가기 전까지 초중고를 함께 보내면서 속에 있는 이야기 다 털어놓을 정도로 가까웠죠.

나중에 오빠랑 결혼하면 본인이 제대로 미운 시누이 노릇 해주겠다며 농담도 할 정도로 유진이와는 둘도 없는 사이였어요. 우리 셋은 어린 시절 대부분 추억을 공유할 만큼 함께 보냈어요.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이었나요. 그저 친한 오빠로 생각하던 남편이 남자로 보이기 시작한 건 제가 방학 기간 동안 잠깐 미국에 어학연수 갔을 때였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남편이 유학하고 있던 뉴욕으로 가길 원했고 저도 처음으로 타지로 가는 만큼 누군가 기댈 곳이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놓인 것도 사실이었어요.

남편은 언제 또 뉴욕에 오겠냐며 자기 공부도 바쁜 와중에 저를 데리고 관광시켜주고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면서 즐겁게 지냈는데 3개월간 함께 뉴욕 생활을 하면서 보게 된 남편의 모습은 어린 시절부터 봐오던 친근한 오빠가 아닌 멋진 남자의 모습이었어요.

전 세계 사람들이 다 모인 뉴욕에서도 항상 당당했고 친구들 사이에서 리더십이 보이는 남편의 모습은 정말 멋졌죠.

이런 남자라면 진짜 아버지 말대로 결혼해도 믿고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에 품고 있었는데 남편은 친구들과 파티가 있을 때마다 저를 초대해서 본인이 미래의 와이프라고 소개했는데 그땐 그저 농담으로 하는 말인 줄로만 알았어요.

제가 뉴욕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가기 전날 남편이 저에게 반지를 내밀더라고요.

“현지야, 사실은 내가 아저씨한테 너 여기로 보내달라고 부탁드렸어 너한테 고백하고 싶어서..”

남편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당황했지만 제가 마음에 품고 있던 남편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다고 생각하니 행복했어요. 그렇게 저희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뜨거운 연애를 했고 유학에서 돌아온 남편의 프러포즈로 저희는 결혼 약속을 하게 됐죠.

아버지들은 두 분의 소원이 이루어졌다며 저희의 결혼을 진심으로 반겨주셨고 유진이도 “오빠가 어릴 때부터 제 이야기를 그렇게 물어봤다”면서 “이렇게 될거라고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면서 축하해 줬습니다.

결혼 후 경영학을 전공한 남편은 두 분 밑에서 일을 배우며 차근차근 후계자 수업을 시작했고 유진이도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회사 회계팀에서 일을 하게 되었어요.

회사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저는 음대에서 공부한 피아노 전공을 살려 동네에 작은 피아노 학원을 운영했고 결혼 1년 만에 사랑스러운 아들을 가지게 됐습니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했던 나날들이 흘렀는데 아들이 12살이 되던 해에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사건이 생겼는대요.

남편은 “회사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며 회사에 저를 불렀는데 회사에는 파란 박스를 들고 있는 수사관들이 와 있었고 아빠는 그들의 손에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아빠 도대체 무슨 일이야?”

“현지야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래도 오해가 있는것 같네. 금방 조사받고 돌아가마.”

아빠는 회삿돈을 횡령했다는 고발이 들어오게 되면서 조사를 받게 된 거였어요. 검찰이 제시한 많은 증거들은 아빠가 회삿돈을 꾸준히 횡령해왔음을 가르키고 있었죠.

아빠가 횡령한 돈들이 들어있는 차명계좌들이 나오면서 저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과는 다르게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저는 정말 믿을 수가 없었는대요. 아빠는 저와 남편이 결혼할 때 가족끼리 경영권 다툼이 있어선 안된다며 일선에서 물러날 준비까지 하고 계셨거든요. 최종 판결 날 법원에서 아버지는 판사님과 시아버지께 호소하셨어요.

“형님 저 아닙니다. 저 차명 계좌 같은 거 당치도 않아요. 저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분명히 무슨 오해가 있을 겁니다. 형님 저 믿으시죠?.. 형님!”

“상철아 네가 나한테 이럴 줄 몰랐다.. 내가 너를 얼마나 믿었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우리를 배신할 줄이야.. 너를 위해 어떤 것도 하고 싶지가 않다.”

시아버지께서는 아버지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끼신다며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겠다고 하셨어요. 그렇게 냉정하게 행동하셨는데 어찌 보면 평생의 중마고우에게 실망하신 시아버지의 행동은 당연했죠.

모든 증거가 아버지를 향하는 상황에서 심지어 엄마나 저조차 아빠를 완전히 믿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징역 5년에 추징금까지 받게 되면서 아버지는 교도소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회사의 경영권 모두는 시아버지께로 넘어갔고요.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요. 시어머니께서 집으로 저를 부르셨어요. 그곳에는 시부모님과 남편 유진이까지 모두가 모여 있었고 시어머니께서는 저에게 서류 한 장을 내미셨습니다.

“너도 잘 알겠지? 너의 아버지 때문에 지금 회사가 어떻게 됐는지, 우리가 더 이상 배신자의 가족하고 어떻게 가족일 수가 있겠니. 당장 여기 도장 찍고 내 아들하고 이혼해라.”

시어머니는 배신자 가족과는 살 수 없다며 남편과의 이혼 서류를 내밀었고 옆에 가만히 서 있는 남편은 이미 얘기를 끝낸 모양이었습니다.

“현지야 너를 보면 자꾸 배신한 장인어른이 생각이 나서 나도 더 이상 같이 못 살 것 같다. 그냥 우리 여기서 헤어지자.”

저는 아직 아버지께서는 억울하다고 하시고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고 말했는대요.

옆에서 지켜보던 유진이는 저에게 쏘아붙이며 “야, 이현지 넌 양심도 없니?! 너희 아빠가 한 짓을 보고도 억울하다는 말이 나와? 아저씨가 회삿돈 뒤로 빼돌려서 너네 가족 배불리려고 한 거 아니야. 정말 기가 막혀서”

믿었던 남편과 저의 단짝 친구라고 생각했던 유진이까지 더 이상 저를 보기 힘들다는 모습에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었고 아들의 양육권까지 뺏기고 마치 죄인처럼 그 집에서 쫓겨났어요.

이혼 후 아들 얼굴 한 번만 보게 해달라면 사정했습니다. 시어머니는 더 이상 이 집안일에 관여하지 말고 죄인답게 쥐죽은 듯이 살라는 말 뿐이었고 절대 저와 아이를 못 만나게 하셨죠.

다른 건 다 괜찮았지만 내 배로 낳은 아이의 얼굴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저는 절망했고 제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질수록 상황을 이렇게 만든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커져만 갔어요.

아빠의 외로움 싸움은 계속되었습니다. 엄마도 변호사를 구해 이리저리 뛰었지만 수차례 항소해도 아빠의 목소리는 어느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죠. 너무나도 억울했던 아빠는 스스로 죽음을 택하면서 마지막 호소를 하셨습니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이 사건 때문에 몸이 좋지 않으셨던 엄마는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을 버티지 못하시고 쓰러지셨습니다. 저 홀로 아빠의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시댁 식구 어느 한 명도 모습을 보이지 않더라고요..

아무리 미워도 평생을 중마고우로 지내온 친구 가는 길조차 바라봐주지 않는 시댁 식구들이 이해가 되질 않았고 그냥 야속하기만 했습니다.

아빠의 유류품에는 눈물로 꾹꾹 눌러 쓴 작은 쪽지가 하나 있었는데 “현지엄마, 현지야. 나는 억울하다. 나는 절대 그러지 않았다.”라고 아빠의 쪽지에는 죽음으로까지 억울함을 말하고 싶었던 심정이 드러난 짤막한 호소가 있었어요.

그걸 보니 아빠를 끝까지 믿어주지 못하고 원망까지 한 제 자신이 한심스럽더군요. 세상 천지에 별거 없이 버려진 저로서는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어낼 만한 힘은 없었습니다..

더는 서울에 남아 있을 수가 없었기에 아픈 어머니를 모시고 지방 조그마한 시골 도시로 내려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주변을 통해서 아들의 소식은 들을 수 있었지만 강경한 시어머니 때문에 제 아들 얼굴조차 볼 수가 없었죠.

매년 아들 생일날 남편을 통해 생일 선물과 편지를 전달하는 것 정도가 제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전부였어요. 남편은 가끔 저를 보면 많이 안타까워하는 눈치였지만 딱 그 정도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고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남편은 회사의 대표이사가 되었습니다. 회사를 키워가며 승승장구하고 있다고요.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아무리 시간이 흘렀지만 내 아이의 아빠고 한때 사랑했던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에 마음 한 켠이 무거웠습니다. 장례식에 가보려 했지만 어머님과 유진이는 지난 세월 무색하게 반대하더라고요..

남의 아들 장례식장에서 깽판 놓을 생각도 없었고 그렇게 저는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시골 마을에서 작은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던 저는 여느 날처럼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들어왔어요.

“엄마”

뒤를 돌아보는 순간 정말 상상만 하고 꿈에서만 그리던 아들이 눈물을 흘리며 서 있었고 20년이 지난 세월이었지만 내 아들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죠.

“지호야 어떻게 네가..”

저에게 아기처럼만 보이던 12살짜리 아들이 서른이 넘은 건실한 청년이 된 모습에 저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20년간 그리워만 하다 먼발치에서 소식만 전해 듣던 아들이 내 앞에 서 있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어요. 아들은 지금까지 제가 본인을 보는 것을 극도로 원치 않는다는 시어머니 말에 저를 원망도 많이 했다고 하네요.

엄마가 그렇게 보기 싫어하는데 자기가 찾아가서 뭐하나 싶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얼마 전에야 제가 생일 때마다 편지와 선물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답니다. 할머니가 자신에게 말한 것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것도 알았다더군요.

더 일찍 찾아오지 못해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는데 능력 없는 엄마가 더 미안했죠. 이렇게 아들 얼굴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일이었고 아들과 20년간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너무나 성실하고 바른 지식인으로 자랐더라고요. 내가 낳은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남긴 유언이 장 변호사를 찾아가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엄마가 늘 생각을 하고 있다는 소리를 전해 들었다고요.

“엄마,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엄마한테 전해달라고 한 편지 한통을 장 변호사에게 남겼는데 이거 엄마가 봐야 할 것 같아서..”

장 변호사님은 아들에게 남편이 남겼다는 편지를 전해줬는데요. 남편이 남긴 편지에는 충격적인 사실이 들어있었습니다.

“현지야 오빠야. 이제까지 너 하나 지키지 못해서 미안하다. 이 편지를 언제 전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죄책감이 깊어져만 가는 오늘 글로라도 남긴다. 꽃 같은 나이에 시집 와서 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이제 와서 정말 면목 없다.”

“몇년전 너무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어. 그게 너무 충격적인 내용이라 지금도 선뜻 이 모든 걸 바꿀 용기가 나지 않아. 회사 공금 횡령으로 구속된 너희 아버지는 사실은 누명을 쓴 거였어. 실제로 공금횡령을 하다 걸린 건 바로 내 동생인 유진이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의 회사에 대한 욕심이 더해져 실로 우리 집안은 괴물이 됐어”

“처음엔 우리 아버지의 어머니가 딸의 잘못을 덮으려 서류를 꾸민 거였지만 너희 아버지만 없으면 그 회사는 우리 집안 것이 되니 너희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그렇게까지 뒤집어 씌운 거였어. 아예 관계도 끊어버리고 말이야. 나는 그 일이 일어난 지 10여 년이 흘러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됐고. 알고 있는데도 일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어.”

“난 이걸 나중에 후회할 거야. 그것도 알아 나를 절대 용서하지마. 지호 보고 싶어하고 지호 생일마다 선물이며 편지며 챙기는 널 보면서 정말 안타깝고 미안했어. 어머니는 알고 계셨고 지호에게 혼란이 생긴다며 그걸 전하지 못하게 하시는데 어찌 할 수 없는 내 자신에게 실망만 하는 세월이었지.”

“너에게 다 용서받지 못하겠지만 그 일을 알게 된 시점부터 보관한 모든 증거와 자료를 너에게 줄 거야. 지금도 유진이는 회삿돈을 횡령하고 있어. 그 증거까지 모두 장 변호사에게 전해두었어. 앞으로도 계속 전해둘 거야.”

“그런데 내가 살아갈 자신이 없어져가 혹여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나의 모든 재산 또한 당신이 받게 될 거야. 내 손으로 빠른 시일 내에 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길 오늘도 바라면서.. 미안하다 현지야..”

돌아가시기 전까지 본인은 회삿돈에 손댄적 없다며 그렇게 억울해하시던 아빠의 모습이 떠오르고 남편에 대한 원망과 한 켠의 안타까움에 가슴 치며 통곡했어요.

본인들의 잘못을 뒤집어 씌우고 뻔뻔하게도 저희 아빠를 배신자라 몰아붙이며 장례식장에도 얼굴도 한번 비치지 않은 그 가족들을 그냥 가만히 둘 수는 없었습니다.

아들과 일단 장 변호사님을 만났죠. 남편에 대한 이야기와 남긴 자료 편지를 아들에게 준 이유 등을 다 설명 들었어요. 그리고 20년 전 쫓겨났던 그 집으로 향했는데 20년이라는 세월은 참 많은 게 바뀌게 하는 긴 세월이었죠.

“아니 네가 왜 여기에? 지호 네가 데리고 왔니?”

20년 만에 뵙는 시어머니는 어느새 80대 백발 노인이 된 상태였어요. 제 등장에 꽤나 놀란 눈치셨고 옆에는 제 단짝 친구이자 시누이였던 유진이도 함께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뵙네요. 20년 만인가요 어머님도 참 많이 늙으셨네요. 유진아 너도 오랜만이다.”

“쟤는 여기가 어디라고 염치 없이 발을 들여놔? 당장 안 나가?! 지금 전 남편 죽었다고 뭐 콩고물 떨어지는 거 없나 하고 주워 먹으러 온거냐? 지호야 네가 너무 어려서 잘 몰랐겠지만 제일 친한 친구 배신하고 회삿돈 뒤로 빼돌리던 사람 딸이야. 절대 속아선 안돼. 너도 버리고 집에서 나간 사람이란 말이야. 세월이 흘러도 어쩌면 저렇게 뻔뻔할 수가 있는지”

“할머니, 고모 제가 무슨 바보 등신인 줄 아세요? 그렇게 모질게 엄마 내쫓아내고 엄마가 저한테 보내는 편지도 다 가로채놓고 아직도 제가 할머니 거짓말의 속을 애로 보이세요?”

“어머 지호야. 너 말버릇이 그게 뭐니? 네 엄마라고 지금 편드는 거야? 네가 누리고 사는 거 누구덕인지 몰라? 현지야 너도 참 양심도 없다. 여기가 어디라고 다시 들어와? 너희 아빠 때문에 우리 아빠가 얼마나 고생하시는지 아니 죄 지었으면 쥐 죽은 듯 살아야지 말이야. 그 피가 어디 가겠어 니 아빠가 20년 전에 왜 그렇게 돈 욕심을 부린지 알 것 같다.”

본인의 잘못은 잊어버린 건가요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뻔뻔하게 우리 아버지를 모욕하는 유진이 그년을 가만 놔둘 수가 없었죠.

“너는 참, 나이를 먹어도 잘못을 뉘우칠 줄은 모르는구나? 내가 여기 그냥 왔겠니? 너 20년 전에 회사 회계 장부에 손 댔더라. 그거 문제 생기니까 그걸 너희가 우리 아빠한테 덮어씌웠고”

“뭐라는거야?! 무슨 헛소리야?? 증거 있어? 증거.”

“너희 오빠가 예전부터 너희 부모랑 네가 한 짓 다 증거로 남겨놨더라. 이미 변호사까지 정해서 말이야. 니네 가족이 네 잘못 덮고 그 회사까지 탐이 나서 증거까지 조작해 가면서 우리 아빠한테 누명 씌어놓고 그 더러운 입에 우리 아빠를 올려? 우리 아빤 그때 이미 회사에서 물러나려고 하셨었어. 너희가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줬다면”

그러자 유진이가 당황했는지 겁먹은 고양이처럼 파르르 떨더라고요.

“뭐?! 뭐 어쩌라고. 이미 공소시효도 끝났고 뭐 어떡할 거야? 너희 아빠는 이미 죽었고”

가만히 듣고 있던 아들은 유진이에게 버럭 소리 질렀죠.

“고모 좀 정신 차려 진짜! 증거? 있지! 20년이 지났는데 그 증거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 안그래요? 근데 고모는 아직도 회삿돈 손대고 있던데 여기저기 안해 먹은 곳이 없더라. 이미 회사에서 조사 들어갔고 이사님들하고도 이야기 끝냈어. 앞으로 회사 나올 필요 없어 해고야. 그리고 당신들 당장 이 집에서 나가야 할 거야. 이 집 엄마 명의로 이전 끝냈거든. 그리고 아버지가 모든 재산 엄마한테 위임했으니 당신들한테 떨어지는 건 한 푼도 없어.”

꿀먹은 벙어리가 된 시어머니와 유진이는 그때서야 상황 파악이 되는 듯 했어요.

“현지야 우리가 알고 지낸 세월이 얼마니.. 이 노인을 평생 산 집에서 당장 나가라고 하면 어디 가서 살아? 이렇게 감정적으로 하지 말고 한때 시어머니였던 그간의 정을 봐서라도..”

“어머님 저 내쫓으실 때는 그런 적이 없으셨나 보네요? 억울한 우리 아버지 희생양 삼은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네요. 당장 짐 싸서 이 집에서 나가세요.”

유진이는 참 끝까지 이기적이었어요. 지 엄마가 집에서 쫓겨난다고 해도 지 감옥 가는 게 더 무서웠나 봐요.

“현지야 설마 진짜 검찰에 고발한 건 아니지?! 우리 친구잖아. 친구끼리 이러면 안 되지. 20년 전에는 엄마가 시켜서 한 거라고! 난 엄마, 아빠가 이렇게 하면 아무 일도 아니라고 그렇게 해도 된다고 해서 한 것뿐이라고 제발 살려줘..”

자기 엄마까지 팔아가며 살려달라며 싹싹 비는 유진이를 한대 때리고 싶었지만 굳이 제 손 더러워질 것 같아서 꼭 참았네요.

“넌 이미 늦었어. 내가 꼭 너 감방에서 절대 못 나게 할 거니까 각오해”

집에서 당장 나가라고 했음에도 뻔뻔한 인간들답게 눌러 앉아 버티고 있더라고요. 제가 그 집에 같이 살 것도 아닌데 말이죠. 당장 부동산에 집 급매로 내놔 팔아버렸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집에서 버티고 있다가 새 주인이 오자 영문도 모르고 쫓겨났겠죠. 아들이 직접 회사에서 조사를 진행했고 검찰에 고발하면서 유진이는 구속되었어요. 회사에 있는 내내 여러 분야에서 회삿돈에 손댔더라고요.

심지어 유진이 남편은 회삿돈으로 도박하다가 날려먹은 빚까지 있었고요. 유진이는 개버릇 남 못 준다고 결국 제 버릇 때문에 징역 6년에 추징금 10억을 판결받게 되었고 끝에 남아 있던 돈까지 잃게 되었어요.

지금도 시어머니는 이 모든 걸 자기 잘못으로 탓하며 50 넘은 딸 감옥 뒷바라지 하면서 교도소 드나든다고 하네요. 모정이 삐뚤어지면 이렇게 사람 열어 죽일 정도로 무서운 거죠.

20년 만에 밝혀진 진실로 제 자리를 찾게 되었지만 아빠를 끝까지 믿어주지 못한 게 마음 한편에 항상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 제 마음을 알아서인지 아들은 시간 날 때마다 외할머니와 함께 외할아버지 납골당을 찾아 인사드리고 회사 얘기를 들려드리곤 하네요.

그리고 지금 용서할 수는 없지만 마지막이라도 진실을 알려준 남편에게는 덕분에 아버지의 억울함을 늦게나마 풀 수 있었던 것 같아 조금은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만큼 그 사람도 힘들었을 거고요 시간이 해결하겠죠..

아들에게 회사 전권이 위임되었어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본인이 일궈놓은 회사, 하나뿐인 손주가 대표가 되었다는 사실을 아시면 정말 뿌듯해하실텐데 오늘따라 아버지의 그 모습이 그립네요.. 제 긴 사연을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