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꽃길만 걸으세요..” 원치않던 강제 결혼생활로 오열하는 방은희의 힘든 고백이 들려왔다

1988년 영화 <사랑의 낙서>로 데뷔한 방은희는 많은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습니다. 하지만 항상 밝은 모습만 보여줬던 그녀에겐 차마 밝힐 수 없는 안타까운 모습도 있었는데 아무것도 모른채 강제된 결혼 생활을 해야 했으며 늘 두려움에 떨며 살아야 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두 번이나 이혼하게 됐는데 방은희는 <동치미>에 출연해 재혼한 남편과 이혼한 충격적인 이유를 밝혔습니다.

1967년생 방은희는 매우 보수적인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기집애가’라는 말을 달고 살았으며 유독 딸인 방은희에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밀었습니다.

방은이의 시력이 나빠져 안경을 써야 할 상황에도 아버지는 ‘여자는 안경을 써도 재수가 없어’라는 가부장적인 말을 했다에 자존감을 떨어뜨렸습니다.

이에 방은이는 어릴 때부터 심한 속앓이는 했습니다. “죽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못 나가게 했어요. 집에 가둬뒀어요. 그래서 여자인 것이 싫었어요.”

방은이는 연기하고 싶다고 했을 때도 거센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그녀는 어느날 연극 <님의 침묵> 무대에 선 이해영을 보고 연기의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이해영은 1인 다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냈고 그를 본 방은희는 가슴 속에서 꿈틀거리는 열정을 발견했습니다.

이후 그녀는 아버지에게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지만 외출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반응은 과격했습니다.

“연극 배우를 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러니까 정말 다 때려 부으면서 저를 쫓아내시더라고요. 호적에서 파버린다고 하고 많이 반대하셨어요.”

강경한 아버지의 태도에 큰 상처를 받은 방은희는 나중에 자신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게 된다면 절대 아버지처럼 자식을 키우지 않으리라 다짐했습니다.

“만약에 내가 아이를 낳는다면 딸이든 아들이든 자유롭게 키워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아들을 낳았을 때 어릴 때부터 선택을 일찍부터 시켰어요. 아장아장 걸을 때부터 물건을 직접 고르게 했어요.”

실제로 방은희는 아들을 키우면서 잔소리 한 번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부모는 잔소리 한 번 하지 않고 통제하지 않는다면 자식이 엇나가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아들은 그 어느 자식보다 훌륭하게 자라줬습니다.

과거 동치미에서 그녀의 아들은 엄마인 방은희에게 영상 편지를 보내 자리에 함께한 많은 이들을 올린 적 있습니다. 그는 다음 생에도 방은희의 아들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저는 다음에 태어나면 저희 어머니가 제 딸이었으면 좋겠어요. 정말 잘 키워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더불어 홀로 있는 엄마에 대한 애틋함을 담은 당부도 잊지 않았습니다.

“엄마,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오래 있을 것 같으니까 엄마는 서울에서 하고 싶은 것도 많이 하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안 외로웠으면 좋겠어요. 사랑해요.”

이를 들은 mc 최은경은 “내 아들도 아닌데 눈물이 나요.”라면서 따뜻한 마음의 감동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함께 출연했던 선우은숙, 이지현 등도 연신 휴지로 눈물을 닦았습니다.

이렇게 열 딸 부럽지 않은 아들이 있는 방은희이지만 그녀에게는 남들보다 유독 가슴 아픈 시절이 있었습니다. 88년 영화 <사랑의 낙서>로 데뷔 후 <걸어서 하늘까지> <상류사회> <넘버 3>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던 그녀의 다작 배우라는 타이틀은 연기에 대한 열정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방은희는 스스로 자신을 생계형 연기자라고 칭한다는데 그만큼 그녀는 한때 심각한 생활고를 겪었습니다. 그녀는 몸이 아플 때도 꾹 참고 촬영하러 갈 정도로 경제적으로 힘든 생활을 해야만 했는데 이에는 두 번의 이혼 탓이 크다고 전해집니다.

방은희는 2000년 5월 한달 만난 성우 성완경과 결혼했고 아들을 낳고 키우다가 3년만에 이혼했습니다. 졸지에 이혼녀이자 싱글맘이 된 방은희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얻었고 허리디스크로 수술을 두 번이나 하며 몸까지 망가졌습니다.

하지만 아들을 홀로 키우며 돈 한 푼이라도 아쉬운 상황이었기에 그녀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했습니다. 수술한 다음 날 촬영하러 나가는 것은 물론이 그동안 맡았던 예쁘고 고운 역할 말고 식모 역할이 들어왔을 때도 마다치 않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렇게 매일을 열심히 달리던 그녀는 2010년 소속사 대표 김씨와 재혼을 했는데 이 결혼 생활 역시 굉장히 불행했습니다. 그녀는 재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솔직히 제 아이한테 아빠의 존재가 있었으면 하는 게 제일 컸어요. 저 혼자서도 기대고 싶고 의지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으면 했고 그런데 이제 우연히 알게 된 분이 왠지 저희 아이의 아빠가 돼 줄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녀는 결혼을 결심하는데 김성령의 조언도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저는 남자 보는 눈이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친구인 김성령이 직접 봐줬는데 만나서 얘기를 해보다가 성령이가 ‘언니야 잘은 모르겠는데 이분이면 적어도 아들한테는 잘해줄 것 같아’라는 얘기를 했어요.”

절친한 김성령의 말에 방은희 역시 김씨를 향한 호감을 느끼게 되었는데 두 사람은 만난 지 한 달 만에 부부가 되었습니다.

“한달 만에 남편이 혼인신고를 해버렸어요. 성격이 엔터쪽에 사업을 하시던 분이셔서 목표 결정을 딱 해놓고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는 그런 분이신 거죠.”

그녀의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했고 그 때문에 방은희와 김씨는 서로에 대해 알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서로 아는 게 없었어요. 알려고도 안 했고 부부 생활도 없었고 그리고 뭐라고 해야 하나 무서웠어요. 결혼 후 진짜 이분하고 결혼하신 게 맞습니까하는 연락이 세 번이나 오더라고요. 그리고 남편과 결혼해서 작품이 무산됐어요.”

재혼 후 계속해서 불발되는 출연 때문에 의구심을 갖게 된 방은희는 그에 대해 남편과 상의하려 했으나 김씨는 모르는 일이라고 선을 긋는 것과 동시에 대화를 거부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는 답답함을 느꼈지만 두 번째 결혼이기에 다시 이혼은 없다면서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하지만 남편과의 관계는 계속해서 틀어졌습니다.

“일을 많이 하시고 술을 많이 드시고 입에 접착제를 붙였는지 말도 안 하고 화만 냈어요. ‘무슨일 있느냐?’고 물으면 ‘내 일에 대해 알려고 하지마. 내가 무슨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잖아. 알 필요도 없어.’라고 했어요.”
 
또한 그녀는 불륜을 의심할 만한 정황도 포착했다고 밝혔는데 “사업을 하기에 주 5일 이상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데 집에 오면 휴대폰을 거의 끄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은 술에 취했는지 휴대폰에 불이 들어오더라고요.

“문자를 우연히 보게 됐는데 거기에 ‘오빠 어디야? 오빠 뭐해?’라는 문자가 있었어요. 그래서 얘기를 했더니 남자가 사업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는 식으로 얘기하더라고요.”

방은이의 고백을 한참 듣던 선우은숙은 “초혼이면 더 부닥쳤을 수 있었을 텐데 재혼이니까 언론에 이렇다 말이 나왔을 테고 그래서 더 힘들었을 거예요.”

“하지만 내 동생이나 딸이었다면 그래도 잘했다고 생각해요. 두번 이혼하면 어떻고 세번 이혼하면 어때요.”라며 그녀를 응원했습니다.

네티즌 역시 ‘잘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결혼하고 결국 이혼으로 이어지다니 안타깝습니다.’ ‘결혼 생활이 지옥 같으셨겠어요.’ ‘그래도 지금은 아들과 함께 행복해 보이셔서 다행이에요’라며 격려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여자로서는 참 굴곡진 인생을 살았던 그녀가 앞으로는 행복한 길만 걷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