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환자들의 생활비와 장학금을 지원하고 무료 진료로 사랑을 베풀다 별세하신 94세 한원주 선생님
“배움이 없던 때 저에게 의학을 공부하게 한것은 이웃을 위해 살라는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기로 했습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무료 진료를 하며 의사로 일하고 싶어하셨던 한원주 선생님이 지난 9월 30일 향년 94세로 별세한 소식이 뒤늦에 알려져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습니다.
구순이 넘도록 청진기를 놓지 않았던 한원주 선생님은 1926년 일제 강점기에 의사이자 독립운동가인 부친 한규상과 항일 투쟁을 도운 모친 박덕실의 여섯 자매 중 셋째로 태어났는데요.
평소 청렴하시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던 아버지를 따라 1949년 경석여자의학전문학교를 졸업 후 의사의 길을 걷게됩니다.
1959년 산부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뒤 남편을 따라 미국 유학길에 오르고 그로 부터 10년 뒤인 1968년 대한민국의 어려운 이웃을 돕고자 귀국하는데요.
정성스럽게 환자들을 돌보는 선생님의 마음이 전해졌을까 개원한 병원은 문전성시를 이뤘는데 그러던 1978년 한원주 선생님의 남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먼저 떠나게됩니다.

이후 한원주 선생님은 의료봉사에 인생을 바치게 되는데 1982년엔 환자의 정서, 환경까지도 치료로 포괄하는 ‘전인 치유진료소’를 운영하며 생계가 어려운 환자들의 생활비, 장학금까지 지원합니다.
환자들이 건강뿐 아니라 온전한 자립을 까지 도운 선생님은 ‘부와 명예를 내려놓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삶을 살다보니 마음이 행복했다’고 하는데요.
“생의 마지막까지 환자들과 더불어 하늘나라로 가고 싶은 게 작은 소망”이라는 선생님은 그렇게 30년 가까이 봉사의 길을 걸었습니다.

남양주에 소재한 매그너스요양병원에서 마지막까지 활동하던 한원주 선생님은 평소 환자들 곁에서 눈높이를 맞추며 노래도 가르치는 등 환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는데요.
환자들과 함께 병원에서 숙식을 하며 지냈으며 병원에서 받는 대부분의 급여를 10곳이 넘는 사회단체에 기부를 하고 계셨습니다.
“사랑만 가지고도 병이 나을 수 있습니다. 큰 의사는 역시 정신적인 부분까지도, 말하자면 토털 힐링을 하는 그 상태가 큰 의사의 직분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 길이 비록 힘들고 수입이 적을지 몰라도 역시 우리 의사가 가야할 길은 그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한 평생 환자곁에 머물며 몸과 건강을 치료하던 한원주 선생님은 9월 30일 추석을 하루 앞두고 영면에 드셨는데 직전인 9월 7일까지도 환자를 진료하셨는데요.
임종을 지키는 가족과 동료들에게 ‘힘내라. 가을이다. 사랑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 한원주 선생님의 따슷하고 아름다웠던 삶 잊지 않겠습니다. 우리곁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