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우정..” 암투병중임에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묵묵히 웃으며 방송한 엄정화 그리고 최진실과의 소중한 인연

암투병중임에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묵묵히 웃으며 방송한 엄정화 그리고 최진실과의 소중한 인연

어느덧 데뷔 30주년을 맞이한 가수 엄정화, 그녀는 ‘갑상선암 수술을 받고 오랜 시간 노래를 하지 못했다’는 남다른 고민과 함께 ‘극복해가는 과정인데 너무 겁이 난다’며 솔직한 심경을 밝혔는데요.

우리나라의 대표 섹시 디바를 뽑자면 김완선을 빼놓을 수 없는데 이후 엄정화, 이효리, 가인 등으로 계보가 이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 엄정화의 경우는 ‘가요계 퀸’으로 군림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연기로도 대중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으며 여자 탤런트 중에 전무후무한 존재가 아닌가 합니다.

그런 엄정화인데 사생활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이 비밀에 쌓여 있는데 특히 남자친구와의 열애설이 더 그렇습니다.

어릴적 그녀의 집안은 굉장히 가난했는데 그녀의 아버지는 중학교 음악 선생님으로 일하다가 그녀가 6살 되던 해 바이크 사고로 떠나게 됩니다.

그 이후 학교 매점에서 살게 되는 등 고난을 겪게 됐는데 당시 엄정화의 담임 선생님은 “정화가 학생 전체가 율동을 할 때 다른 학생들에 비해 아주 눈에 띄게 잘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또 엄정화는 학교 매점의 딸이었어요. 엄마를 도와 핫도그를 만들다가 기름에 화상을 입어 아주 고생한 일이 기억나네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당시에 대해 “저는 딸 셋과 아들 하나인 우리 집의 차녀예요. 20살때부터 집안 생계를 책임져야 했어요.”라고 힘들었던 과거를 회상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엄정화는 곧 mbc 합창단원으로 취직하게 되는데요. mbc 합창단 모집 공고를 보고 원서를 냈지만 고졸인 그녀는 전문대 졸 이상만 지원할 수 있는 벽에 부딪혀 서류에서 탈락하고 마는데요.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특채를 모집하기만 기다린 결과 비공식적으로 오디션을 보고 합격했습니다.

“합창단에 붙고 mbc 앞에서 1시간 넘게 서 있었어요. 너무 좋아서 매일매일 출근할 거라고 다짐했죠. 하지만 제가 합창단원 중에서 제일 막내이고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도 있는 시골 아이였던 터라 프로그램에 투입이 안 됐어요. 피아노 밑에서 서럽게 운 적도 많았어요.”

하지만 곧 프로그램에 투입되었고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마침내 영화 ‘결혼 이야기’에 단역 데뷔하면서 ‘로얄디’ CF 광고까지 찍게 됩니다.

그리고 유하 감독의 첫 감독 데뷔작인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의 주연으로 발탁됩니다.

엄정화는 故 최진실과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데요. 그녀가 배우 생활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최진실이 노래를 너무 못했기 때문’이라며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1994년 당시 최진실씨는 톱스타였는데 한 쇼 프로그램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고 이때 노래에 자신이 없었던 최진실을 돕기 위해 엄정화가 코러스로 투입이 됐는데 이것이 인연이 되어서 엄정화가 최진실 소속사로 들어가게 되었던것이죠.

엄정화는 최진실의 별세 소식에 “아직도 믿기지 않은 사실이에요. 살아오면서 자주 만나지 못했던게 굉장히 후회가 되네요.”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후 그녀는 영화의 삽입곡 ‘눈동자’를 부르며 가수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고 다른 노래들 또한 크게 히트를 치면서 섹시 디바로 입지를 다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 시절 엄정화의 마인드는 배우가 아닌 가수였는데 “데뷔 초기 ‘눈동자’로 활동하면서 연기할 기회를 얻었을 때는 안일했어요. 가수니까 연기는 대충 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나중에 제가 출연했던 드라마를 모니터링하면서 끔찍하게 연기를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그녀는 자기 자신이 너무 싫은 나머지 2년 동안 가수 활동을 완전히 접고 tv 드라마와 연극, 뮤지컬 등 연기에만 몰두하였습니다.

가수 엄정화가 잊혀지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들었지만 이내 그녀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와 ‘싱글즈’ ‘홍반장’에 출연하면서 정말 배우가 되어간다는 확신이 들었죠.

엄정화는 “진정으로 바라는 일은 항상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깨달은게 이즈음의 일이에요.”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후 그녀는 가수로도 다시 성공적으로 복귀를 하는데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20살 이후 엄정화는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녀의 동생 엄태웅은 “제가 이 나이가 되도록 배우가 되겠다고 버틸 수 있었던 건 다 누나 덕분이죠. 1남 3녀 중 정화 누나가 둘째, 제가 막내인데 누나가 가장 노릇을 했죠. 집안 생활비 걱정은 안 해도 됐으니까요.”라고 했습니다.

오랜 시절 오디션을 전전하며 무명 시절을 보낸 엄태웅은 정확히 30살까지 아무것도 안하고 엄마에게 용돈을 받으며 지냈습니다. 하지만 그 돈마저 매일 홍콩 영화 비디오만 빌려보며 지냈죠.

“30살까지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누나가 다른 진로도 생각해 보라고 권했어요. 하지만 다행히 그 해부터 ‘실미도’로 두각을 나타내면서 연기자의 길을 걸을 수 있었죠. 누나는 제가 이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만들어준 아버지 같은 존재예요.”

엄정화와 엄태웅은 5살 차이가 나는데 나이 차이 이상으로 어릴 때부터 엄태웅이 엄정화에게 많이 의지했던것 같았는데요. 정말로 아버지 같은 누나였는지 엄정화는 동생 엄태웅의 결혼에도 적극 개입하는데 현재 엄태웅의 아내 윤혜진을 소개시켜준 것도 엄정화였죠.

그러던 2001년 엄정화는 불법 약물 사건에 연루되기도 합니다.

“예전에 불법 약물 복용 혐의를 받은 적이 있어요. 어느 신문에서 ‘연예인 L양이 수사를 받고 있다’고 보도를 했는데 그 밑에 사진이 함께 실렸죠. 누가 봐도 단번에 저라는 걸 알 수 있었죠.”

그녀는 당시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찍고 있던 때였는데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기만 해도 약물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고 느꼈다고 하며, 너무 억울했던 그녀는 결국 자진해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검사를 받고 촬영장까지 가는 두 시간 동안 정말 많이 울었어요. 살면서 그렇게 많이 운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가난도 서럽지 않았던 엄정화이지만 다른 사람의 오해는 마음에 큰 상처를 준 것 같네요. 그런데 엄정화가 어렸을 때부터 가난을 극복하는 생활을 했기 때문일까요.

2010년 ‘슈퍼스타K’에서 엄정화는 이승철, 윤종신과 함께 본선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당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굉장한 비판을 받았었는데요. 출연자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기 싫었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기간 중에 엄정화가 갑상선암으로 투병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갑상선암이 암 중에서 그리 중한 병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에서 그녀가 보여주었던 싱글벙글한 쾌활함은 보통 정신력의 사람이라면 흉내조차 낼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이후 엄정화는 잘 회복되어서 제 목소리를 내는데 무리가 없게 됩니다.

한편, 그녀가 예전에 살던 집의 경우도 월세만 해도 1000만원 가까이 되고 그동안 벌어들인 돈이 상당하다고 하는데요. 엄정화는 과거 속옷 사업으로 약 1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전해져 화제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한 방송에서는 수익을 많이 낸 스타 중 2위에 오르기도 했으며 평소 속옷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2007년 말 자신의 브랜드를 런칭 직접 디자인한 속옷을 입고 화보 촬영까지 찍는 등 본인이 직접 모델로 나서기도 했습니다.

당시 홈쇼핑을 통해 론칭하자마자 전 물량이 매진되고 분당 매출이 무려 1000만원 당시 홈쇼핑 첫 방송 하루 매출 약 6억 원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엄정화 매장이 75개 점으로 전 세계에 퍼지게 되었는데 한 매장당 하루 매출이 150만 원이 넘을 정도로 잘 돼고 덕분에 브랜드 론칭 3개월 만에 100억 원 매출을 달성했다고 하는데요.

또한 그녀는 영화 ‘댄싱퀸’ 촬영 당시 출연료가 2억 8천만 원이었다고 하며 과거 ‘풍문으로 들었어’라는 방송에서는 그녀의 출연료에 대해 ‘영화 주연으로 출연할 경우 약 3억 원의 출연료를 받는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보통 여배우들은 원톱 주연에 발탁되더라도 남자 배우에 비해 개런티가 낮지만 엄정화는 많이 받는 편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각에선 부동산과 현금 재산만 해도 그녀의 재산이 100억이 넘는다고 추측하고 있는데요.

최근 오랜만에 히든 싱어의 원조 가수로 출연해 얼굴을 비친 그녀가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팬들에게 자주 보여주셨으면 하는 바램이며, 그녀의 행복한 앞날을 언제나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