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언제나 그렇듯이 허름한 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방 청소를 합니다.
“여보 점심 먹고 나서 베란다 청소 좀 같이 하자”
“나 점심 약속 있어”
한가로운 일요일, 해외출장 중인 친구를 팔아 아내와 집으로부터 탈출하려 집을 나서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식탁에 앉아 비비던 밥을 입에 가득 넣고 우물거리던 아내가 저를 쳐다봅니다.
무릎 나온 바지에 한쪽 다리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밥 먹는 모습이 영락없이 제가 제일 싫어하는 아줌마 모습이였습니다.
“언제 들어올 거야?”
”나가봐야 알지”
시무룩해 있는 아내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왔고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셨습니다.
밤 12시가 될 때까지 그렇게 노는 동안 아내에게 몇 번의 전화가 왔지만 저는 받지 않고 버티다가 마침내는 배터리를 빼 버렸습니다.
그리고 새벽 1시쯤 조용히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내는 옆으로 소파에 누워 있었고 잠이 들었다 생각하고 살금살금 욕실로 드러서려는데 이때 힘없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디 갔다 이제 와?”
”안 잤어? 아 친구들이랑 술 한잔했어. 어디 아파?”
“낮에 비빔밥 먹은게 얹혀서 약 좀 사 오라고 전화했는데..”
“아… 배터리가 떨어졌어. 손 이리 내봐.”
여러번 혼자 땃는지 아내의 손끝은 상처투성이였습니다.
“손이 왜 이래, 당신이 손 땄어?”
”웅 너무 답답해서 …”
”이 사람아! 병원을 갔어야지! 왜 이렇게 미련하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아내는 기운이 없었는지 그냥 엎드린 채, 가쁜 숨을 모라 쉬기만 했고 난 갑자기 미안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어서 아내를 업고 병원으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응급실 진료비가 아깝다며 이제 말짱해졌다고 애써 웃어 보였습니다.
저는 당연히 검사를 받아보라 했지만 아내는 고집을 부리고 결국 병원을 나오게 됩니다.
다음날 저는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고 아내가 이번 추석 때는 친정부터 가고 싶다고 말을 꺼냅니다.
노발대발하실 어머님 얼굴이 떠올라 안된다고 했더니 아내는,
”30년 동안, 그만큼 이기적으로 부려먹었으면 됐잖아.”
저는 순간 화가 나서,
“그런 당신은 당신 집 가, 나는 우리 집 갈 테니깐”
추석이 되자 정말로 아내는 짐을 몽땅 싸서 친정집으로 가 버립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혼자서 고향집으로 향했고 어머니는 세상 천지에 며느리가 이러는 법은 없다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아내가 없는 명절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는 태연하게 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여유럽게 클래식 음악까지 틀어놓고 말입니다.
”당신 지금 정신이 좀 이상한 거 아니야?”
아내는 서서 씩씩 거리고 있는 저를 쳐다보며 한마디 하더군요.
”여보 만약 내가 지금 없어져도 당신도 애들도 어머님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을 거야.
나 명절 때 친정에 가 있었던 거 아니야. 병원에 입원해서 정밀 검사받았어.
당신이 전화만 한번 해봤어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거야. 당신이 그렇게 해주길 바랐어.”
아내의 병은 가벼운 위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아내를 따라서 병원을 갔고 멍하니 ‘의사’의 입을 바라보았습니다.
저 사람이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는 건지.. 아내가 위암 이라고..?
의사는 이미 전이될 대로 전이가 돼서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간은 이제 겨우 3개월 남았다고요.. 저는 아내와 병원을 나왔고 집까지 도착하는 동안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엘리베이터에 탄 아내를 보며 앞으로 나 혼자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왔을때 펑퍼짐한 바지를 입은 아내가 없다면.. 엉덩이를 들썩 거리며 방 걸레질을 하는 아내가 없다면.. 술 좀 그만 마시라고 잔소리해 주는 아내가 없다면.. 나는 어떡해야 할까…
아내는 서울에서 유학하는 아이들을 보고 싶다고 했고 아이들은 엄마에게 평소와 똑 같이 엄마의 잔소리에 귀찮다는 듯이 건성 건성 대답을 합니다.
마치 내가 아내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아내는 아이들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꽃이 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여보 꽃도 보고 당신이랑 걷기도 하고.. 좋잖아요. 나 당신한테 할 말 있어. 우리 적금 올 말에 타는 거 말고 또 있어
3년 동안 부은 거야. 통장은 싱크대 두번째 서랍 안에 있어. 그리고.. 나 생명보험도 들었거든. 부탁 하나만 할게.
올해 적금 타면 우리 엄마 한 이백만원만 드려.. 엄마 이가 안 좋으신데 틀니 하셔야 되거든..”
나는 이런 아내의 말에 그 자리에 주저 않아 울고 말았습니다.
아내가 당황스러워한다는걸 알면서도 소리 내어 눈물을 흘리며 울고 말았습니다.
“여보 30년 전에 당신이 프러포즈하면서 했던 말 생각나?”
저는 솔직히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사랑한다 이런말 닭살 맞아서 질색이라 그랬잖아.. 당신은 한번도 나보고 사랑한다 그런적 한번도 없는데, 그거 알지? 어쩔땐 그런 소리 듣고 싶은 적도 있긴 하더라..”
그렇게 아내는 잠이 들었고 그런 아내를 바라보다 저도 잠이 들었습니다.
일어나 보니 커튼 사이로 아침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나는 잠들어 있는 아내에게..
“여보 오늘 장모님 뵈러 갈까? 장모님 틀니 연말까지 미룰 거 없이 오늘 가서 해드리자“
아내는 대답하지 않았고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아내는 웃지도 기뻐하지도 화를내지도 못합니다. 나는 잠들어 있는 아내에게 이제서야 말합니다.
사랑한다고.. 어젯밤 당신에게 사랑한다.. 말해줄 마지막 기회까지 놓쳐버린 나 자신을 원망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