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를 앓고 있는 엄마를 보고..’ 모든걸 내려놓고 실버타운에 들어가겠다는 개그우먼의 안타까운 이유

여성 코미디언 최초로 방송 3사 시상식에서 2관왕 대상 수상자인 이영자, 아직 50대인 그녀가 실버타운 입주를 계획 중이라고 밝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이영자는 왜 실버타운 입주를 생각하게 되었을까요?

한 방송에서 그녀는 “내가 후회하는 게 뭔지 알아? 내가 너무 바보같이 느껴졌던게 나는 우리 엄마를 조용한 집에서 편하게 모시는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라며 치매를 앓고 계신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이어 “엄마가 매일 반찬이 똑같더라. 엄마도 기력이 떨어지니까 균형 있게 식사를 챙겨 드시지 못한거야. 그리고 혼자 있으니까 나는 늘 불안했어.”

“가스불을 잘못 켜고 계신건 아닐까 해서 나중에는 인덕션으로 바꿨는데 인덕션 불은 끌 줄 아시는지, 늘 불안했어. 밤에는 전화를 안 받으면 기겁했어. 새벽이라도 달려가야 했어.”라고 털어놨습니다.

이영자가 실버타운의 입주를 생각하게 된 것은 바로 어머니 때문이었는데 함께 VCR을 보던 성시경은 “실버타운 조금 빠르지 않으세요?”라고 물었고 이영자는 “실버 타운을 만 60세부터 주로 가요.”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저는 실버타운이 아니라 드림 타운이라 생각해요. 빠르면 6,7년 있다들어가는 거죠. 하지만 아직 자식들에게는 부모님을 실버타운에 보내드리면 불효하는 이미지가 있어요.”라고 고충을 밝혔습니다.

이렇게 엄마에 대해 지극히 생각하는 그녀지만 사실 이영자는 어린 시절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아 열등감이 컸을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어린 시절 생선 가게를 하는 부모님과 살았던 그녀는 생선 냄새가 창피했고 몸에서도 냄새가 나지 않을까 항상 전전긍긍했다고 합니다.

생선 가게 딸이라는 콤플렉스가 어디를 가나 냄새부터 맡는 습관을 만든 것인데 더구나 철저히 남아선호사상이었다는 어머니는 그녀에게 살가운 소리를 거의 안했다고 하시는데요.

“우리 어머니는 철저히 남아선호사상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나중에 알았어요. 닭다리가 그렇게 맛있다는 걸, 언제나 닭다리는 오빠고 닭날개는 아버지고 제게 돌아오는 건 닭 목살일 뿐이었어요.”

또한 그녀의 아버지는 외도가 잦았다고 하는데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아버지도 참 많이 외도하셨어요. 나는 엄마가 차라리 아버지와 차라리 이혼했으면 싶었어요.”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가 누구랑 바람 피웠는지 평생 기억하더라고요. 아버지가 혼선을 주려고 했는지 바람 상대가 한명이 아니었어요. 여러 명이라서 난 헷갈렸는데 어머니는 다 기억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부모님이 결혼 생활을 유지했어요.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듯해요. 공식적인 별거는 아니었지만 아버지가 사업 때문에 1년에 2번 정도 집에 오셨어요.”

“아버지가 매일 들어오셨다면 전쟁 같은 하루였을거예요. 엄마가 기분이 좋은 날은 같이 좋고, 우울해 하면 같이 우울했어요.”

아들만을 좋아했던 어머니이었지만 어린 이영자는 그럼에도 어머니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 했습니다.

“어머니가 장사를 하시다 보니까 어린 시절 밥을 해준 적이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소풍 날만 유일하게 김밥을 싸주더라고요. 그게 너무 아까웠어요.”

어머니가 해준 김밥이 너무 아까웠던 어린 그녀는 결국 소풍에 들고 갔던 그대로 도시락을 남겨왔고 방송에서 이러한 일화를 말하던 중 결국 감정이 주체되지 않아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는데요.

1남 3녀 중 셋째였던 이영자이지만 그녀는 가족의 기둥이기도 했습니다.

“어머니가 과거 생선가게 냉동 창고에 갇혀서 그 충격에 큰 수술을 했어야 했어요. 그 때문에 반신불구가 되셨고 이후로 생선 장사를 그만두셨어요. 다행히 당시 연예인으로 활동 중이었어요.”

“데뷔 직후 3주 만에 유명해졌고 돈도 많이 벌게 됐어요. 그래서 데뷔 후 처음 모은 돈으로 쓰러진 어머니 수술비를 마련할 수 있었어요. 연예인이 아니었다면 수술비를 내지 못했을 거예요.”

부모님뿐만 아니라 형제들에게도 그녀는 장녀나 다름없었습니다.

“그 이후 언니의 집을 사줬어요. 형부가 돌아가셔서 조카들에게 아빠 역할을 해주고 싶었어요. 내 가정은 이루지 못했지만 내 가족들의 가정은 지켜주고 싶었죠.”

하지만 정작 이영자 본인이 힘들 때는 가족을 멀리 했는데요.

“내가 가장 돈을 많이 벌었고 집안의 실질적인 기둥이었기 때문에 힘든 내색을 하면 가족들까지 힘들어질까봐 마음에 문을 닫고 살았어요.”

“솔직히 원망스럽고 싫을때도 있지만 내 가족의 가정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커요.”

이렇게 가족을 생각하는 딸이었지만 정작 자신이 대학 진학을 원했을 때 부모님은 딸의 꿈을 반대했었는데 시장에서 하루에 2만원씩 고등어를 팔아 등록금을 모은뒤 서울예대 연극과에 입학하게 됩니다.

사실 이영자는 데뷔하기 전 이미 대학 졸업 후 밤무대에서 활동하며 1980년대 말부터 밤무대의 특A급 mc로 유명했습니다.

mbc에서 정식으로 데뷔한 후 여러 유행어를 히트시키며 1990년대의 대표적인 개그우먼으로 인기를 누리다가 그 다음해 SBS ‘기쁜 우리 토요일’로 자리를 옮겨 성공가도를 달립니다.

1995년에는 kbs의 ‘슈퍼 선데이’에서 구수한 아줌마 연기로 ‘금촌댁네 사람들’을 시청률 40%를 웃도는 초인기 프로로 만드는데요.

한편 PD에게 ‘금촌댁네 사람들’에 신인이었던 홍진경을 출연시켜달라고 무릎 꿇고 빌고 자기 출연료의 일부를 잘라다가 붙여줄 정도로 홍진경의 데뷔를 도왔다고 알려져있는데요.

이영자는 홍진경을 연예인으로 대성시켜준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이영자는 스스로 홍진경의 매니저가 되기를 자처했고 그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홍진경을 대성시켜주기 위해 힘썼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금촌댁네 사람들’과 ‘기쁜 우리 토요일’로 홍진경의 이름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에 성공합니다.

그러던 2001년 3월 잠시 방송을 떠나 있다가 다시 돌아온 이영자는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며 자신의 다이어트 상품을 홍보했고 방송에 나와 다이어트 비법과 요령 등을 알려주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얼마 후 성형외과 의사 김모씨가 ‘이영자는 사실 다이어트가 아니라 지방흡입 수술을 했다’는 사실을 폭로하여 대국민 사죄를 하고 방송 활동을 잠정적으로 중단합니다.

시간이 많이 지난 시점에서 일각에서는 이 사건을 다시 평가했습니다. 일단 그녀가 다이어트 했다고 거짓말하고 사실 지방흡입 수술로 삽했다는 말은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지방흡입 수술도 한 것이죠.

놀랄 만큼 체중을 감량하고 나타난 이영자는 분명 지방 흡입도 했지만 다이어트도 열심히 한 것은 사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술 사실이 밝혀진 시점에서라도 지방 흡입도 해봤지만 효과가 없어서 다이어트를 진짜로 했다고 솔직히 발언했다면 좋았겠지만 절대 수술을 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이죠.

이후 2003년 이영자는 지상파 방송으로 복귀하지만 전성기 때만큼 인기를 끌어올리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 2010년 ‘안녕하세요’를 시작으로 다시 호감 케릭터로 자리잡는데요.

그리고 2018년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고정 출연을 하며 맹활약을 펼쳤고, 그 해 kbs와 mbc 방송연예 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현재 그 누구보다 바쁘게 여러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그녀가 더이상 구설에 오르지않고 앞으로 행복한 일만 가득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