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이 비뚤어진 운명을 향하여 걷기 시작하던 그때.. 15살이였던 저는 딸이 귀하던 우리 집안에 막내였고 공주님처럼 남부러울것 없는 생활을 했습니다.
교육자이셨던 아버지는 개인 교습을 시켜주신다 하셨고 곧 바로 전라도에서 유학을 온 대학생 오빠에게 과외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춘기였던 나에게 대학생이란 신분의 오빠를 처음 보는 순간 저의 시선을 뺏기에 충분했습니다.
오빠는 집안 형편으로 야간에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항상 통금에 쫓겨 다녔기에 그는 저에게 우상으로 다가왔습니다.

수수한 옷차림에 따뜻한 눈빛을 가진 그에게 저는 한순간에 반해 벼렸고 그 역시 저를 친동생처럼 잘 해주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친해졌고 그 해가 지날 무렵 저는 그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입대 영장이 나왔고 그렇게 훌쩍 군대로 오빠는 가버렸고 저는 전라도 신안이라는 곳에 배가 부른 채로 찾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린 나에게 아무것도 가진것없이 임신하였고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날 시댁에서 좋아할리 없었습니다.
저는 만삭이 되고 나서도 가족들의 빨래며 청소, 집안일을 해야 했고 시할머니의 중풍을 수발을 감당하면 살았습니다.
매일밤 눈물로 보내고 고달픔에 지쳐 한순간의 실수로 내 인생이 이렇게 무너짐을 가족과의 생이별을 한탄하면서도 저의 첫사랑인 그를 위한 길이라 생각하며 모진 시집살이를 견뎌 냈습니다.
시아버지의 새참을 가지고 나가던 중 갑작스러운 진통이 왔으며 저는 눈물로 쓸쓸히 그와 나의 사랑의 결정체 혁이를 낳았습니다.
아홉달도 채우지 못한 미숙아를 낳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가 제대를 하고 다시 부산에서 유학 생활을 했지만 저는 시할머니 병수 발로 혼자 전라도에 남아 시집살이를 했고 그나마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확인하던 중 그에게서 편지가 끊겼습니다.

마침 아버지의 환갑 잔치가 있어 가족과의 화해와 시할머니의 치료비로 인한 엄청난 빚을 감당하기 어려워 도움을 얻어야겠단 생각에 부산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자취하던 곳은 말끔하게 정리된 여자의 소품들이 가지런히 있었습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저는 그의 학교로가서 그를 정신없이 찾아다녔습니다.
그는 저를 보면서도 아무 말 없이 다방으로 가자는 손짓을 했고 저는 아이를 등에 업고 그와 그 여자의 뒤를 묵묵히 따라갔습니다. 아이는 무얼 아는지 등에서 계속 울었습니다.
한참 후 그는,
“내 첫 사랑이야. 유학생활하면서 힘들어할 때 옆에서 보살펴 준 고마운 여자야. 이 사람과 함께 살고 싶어!”
저는 그를 바라만 보고 있을 뿐 너무 충격적이고 너무 뻔뻔스러운 그의 표정에서 목이메여 눈물조차 흘릴수 없었고 명치만 무겁게 눌릴뿐이였습니다.
그녀는 대학을 나오고 직장도 있는 27살 성숙한 모습의 여인이였고 저는 중학교 중퇴에 아무런 능력없는 20살 철부지 아내에 불과 했기에 도저히 그녀를 버리란 말을 할수 없었습니다.
나와 우리 아이를 포기한 것이었기에 그렇게 사랑이라는 거짓의 탈을 쓰고 있는 그의 곁을 떠날때 이미 둘째를 임신한 몸이었고 한달도 되지 않아 운이를 눈물로 맞이하며 가슴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큰 오빠는 혁이와 운이를 자신의 호적에 올렸고 저에게 새로운 삶을 살 것을 요구했지만 저는 더 이상 남자는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자식을 조카로 만나야 했고 그렇게 공부에만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년의 세월이 흘러 저의 큰아들 혁이가 내일 결혼을 합니다.
스물다섯살의 청년이 되어 부모의 자격으로 식장에 갈수 없는, 엄마라는 소리를 한번도 들을수 없는 그런 나에게 몇시간전 전화응답기에 메세지를 남겼습니다.
“고모 내일 결혼식장에 예쁘게 해서 오세요. 고모는 미인이니까 아무거나 입어도 이쁘지만 꼭 한복을 입으면 좋겠어요.
죄송해요.. 고모가 결혼하기 전에 제가 결혼해서.. 그리고 옛날부터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꼭 지금 해야 할것 같아서요.. 저 기억하고 있어요.
정확히 옛날일이 기억이나진 않지만 그분.. 마지막으로 만날때를 기억하고 있어요. 죄송해요. 다신 안부를께요. 지금이 마지막이에요. 사랑해요 엄마..
제발 좋은 사람 만나세요. 아빠.. 아니 그분같은 사람 만나지 말구요. 엄마를 아끼는 사람 만나서 행복하세요 제발..”
뜨거운 눈물이 목줄기를 타고 흘러 내렸고 그에게서 버림받던 그날처럼 명치가 무겁게 짓눌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혁이의 결혼을 앞두고 뜬눈으로 밤을 새웠던 것처럼 우리 혁이도 잠을 잘 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 혁이 지금까지 숨죽이며 살아온 나에게 내일은 일생의 가장 행복한 날이 될것이며.. 또한 가장 가슴시리고 그리운 날이 될것이라고.. 나와 아들을 그 사람은 알고 있을까?
자신의 하나의 핏줄이 새로운 삶을 열어가는 오늘.. 불과 5살때 마지막으로 본 그를 아빠로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사실을..
모습조차 보지 못한 또 하나의 핏줄이 보름만 지나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이 사실을..
“지혁아.. 제발 한 여자만을 평생 사랑하길.. 지운아.. 부디 몸 건강히 다녀오길.. 아들들아 이 어미를 용서해 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