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전과 쏨에이 부부는 중국 허난성 카이펑시에 살면서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내려주고 출근을 하던 중이었는대요.
버려진 공장 건물을 지나가는 도중 갑자기 한 어린 아이의 비명소리를 듣게 됩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3살 아이가 약 6m 높이의 폐 공장 건물 지붕에 올라가 있었고, 아이의 발이 지붕 구멍에 빠져 추락할 위험이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겁에 질려 안절부절 못하고 울고있는 아이를 보자 자오전 부부는 서둘러 공장으로 달려갔고, 자오전이 지붕으로 올라가 아이를 품에 안았습니다.
그러나 그때, 아이는 겁에 질려 발버둥쳤고 허름한 지붕은 곧장 무너져내렸습니다. 이후 도착한 구급대원들의 눈엔 널부러진 쇳조각, 널빤지, 못과 피로 가득한 바닥이 보였습니다.
다행히 아이는 무사하였으나 자오전은 머리를 심하게 다쳐 의식을 잃고 말았는대요. 야속하게도 이런 상황에서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안고 급히 현장을 떠났습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차는 긴급하게 자오전을 병원으로 이송시켰는대요. CT 촬영 후 자오전은 “괜찮다”라고 말을 남긴 뒤 곧장 혼수 상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검사 결과, 자오전의 상태는 심각했는대요. 수술로 기적적으로 목숨은 구했지만 뇌 손상, 두개골 내 출혈, 뇌간 손상, 척추와 갈비뼈 골절 등 심각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당시 자오전은 심장은 계속해서 뛰고 있었지만 의식이 없는 식물인간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자오전의 곁엔 매일 병실에 찾아와 아빠가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사랑스러운 막내아들도 함께했죠.

아들은 언젠가 아빠가 다시 돌아와서 자신과 말을 나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매일같이 아빠를 보며 말을 건냈는대요. 그렇게 3년이 흘러 믿기지않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작년 10월 4일, 자오전의 막내아들은 평소처럼 아빠의 침대 옆으로 가서 “아빠, 일어나서 집에 가서 나랑 놀아줘요. 마트에서 아이스크림도 사줘요”라고 말했는대요.
바로 그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아빠가 아들의 말을 알아들은 듯이 엄지손가락을 위로 들어올렸습니다.

아들의 말에 처음으로 반응한 순간이었는대 막내아들은 깜짝 놀라며 “엄마, 아빠가 내 말을 듣고 움직였어요”라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는대요.
아이의 말을 듣고 놀란 아내 쏭메이는 그 즉시 의사를 호출했습니다. 이어 허겁지겁 병실에 온 의사도 “기적이 일어났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대요.
아내 쏭메이는 이 감동적인 상황을 휴대폰으로 찍어 기록했고 자신의 SNS에 올려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됐습니다.

이후 자오전의 상태는 날이 갈수록 좋아졌고 이제는 손과 발, 얼굴을 마음껏 움직일 수 있게 됐다고 하는대요. 사랑하는 아빠를 생각하며 매일 찾아 온 아들의 모습에 기적이 찾아온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하고 있습니다.
다음 소식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대요. 안타깝게도 불의의 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없어진 농구공 소녀에게 찾아온 기적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14억에 육박하는 세계 최대 인구가 살고 있는 중국, 많은 인구탓에 몸이 불편한 이들의 비율 또한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굉장히 높습니다.
2006년 통계에 따르면 전체 중국 인구의 6.43%에 달하는 8,297만명이 신체의 불편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 사이에서 대륙을 충격에 빠지게 한 소녀가 있는데 바로 ‘농구공 소녀’가 그 주인공입니다.
다리가 없는것도 충격적이지만 농구공을 하반신에 심고 익숙한듯 보행을 하는 소녀에겐 도대체 어떠한 사연이 있는것일까요?
지금으로부터 22년전인 2000년 중국 남부 고원지대 윈난성의 한 시골 마을에는 ‘첸 홍얀’이라는 예쁜 아이가 살고있었습니다.
그런데 소녀는 큰 사고를 당하고 마는데 육중한 자동차 밑에 깔리는 사고였습니다. 이 사고로 소녀는 골반 밑이 완전히 망가져 버린것인데요.

당시 아이의 나이는 고작 4살이였는데 너무나도 끔찍한 사고였고 설상가상으로 상처난 부위가 오염됐던 것인지 접합술조차 하지 않았으며 하반신 없이 삶을 살아가야 할 운명에 놓였습니다.
하지만 불행은 끝나지 않았는데 가정의 형편이 좋지 않았기에 의족을 마련할 수도 없었던것이었죠. 그런 손녀가 안타까웠던 할아버지는 묘안을 떠올리는데 바로 임시 의족을 만들어주기로 한 것입니다.
그렇게 낡아 빠진 농구공을 이용해 임시 의족을 제작한 할아버지, 모양은 다소 기이했지만 소녀의 허리 아래를 단단히 고정시키기엔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목발을 잘라 손을 지탱할 수 있는 특수 지지대까지 만들어냈는데요.
소녀는 처음엔 그것들을 이용해 균형을 잡는게 어려웠지만 점차 몸의 균형 감각을 키워나가더니 결국 보행까지 성공하게 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했고 다행이였던건 소녀의 마음이였습니다. 자신에게 발생 한 사고에 불행해하지 않으고 내면을 단단하게 다지고 일상을 천천히 회복해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한 계기로 한 기자가 소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농구공 소녀’라는 이름으로 기사를 쓰게 되는데요. 이후 소녀의 안타까운 사연은 세간에 알려지게 됩니다.
덕분에 ‘농구공 소녀’라 불리며 유명 인사가 된 아이는 많은 이들의 응원과 격려 속에 의족까지 선물받게 되는데요. 많은 응원과 행복한 일이 계속 벌어지자 마음속 깊이 감춰뒀던 자신의 꿈을 조심스럽게 떠올리게 됩니다.

소녀의 꿈은 바로 수영 선수였는데요. 한 인터뷰에서 수영 선수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당당히 밝혔고 당시 장애인 수영 대표팀 감독이었던 ‘장 홍우’의 귀에 그 바램이 닿았습니다.
이후 소녀는 희망을 갖고 수영 선수가 되기 위해 열심히 훈련했는데 처음엔 물에 뜨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결코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10,000M를 돌며 5시간 이상의 독한 훈련을 견뎌냈고 그 결과 눈부신 성장을 이뤘습니다.

2009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 장애인 수영선수권 대회에 출전한 그녀는 여자 100m 자유형 경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게됩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함께 출전한 평형과 접영에서도 은메달 2개를 차지하며 두각을 보였는데요.

소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올림픽이라는 더 큰 꿈을 꾸었습니다. 다행히도 2011년 전국 장애인 경기에서 여자 평형 100m 부문 동메달을 차지하며 기적적으로 패럴림픽 예선 출전 자격을 얻게됐는데요.
하지만 인간 승리의 아이콘이라 불리던 소녀는 돌연 은퇴를 선언합니다. 그 이유는 소녀가 너무도 사랑한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큰 충격과 실의에 빠진 소녀는 점점 성적이 떨어졌고 급기야 선수 생활을 포기하기까지 하는데 ‘점수는 중요하지 않단다’라는 할아버지의 생전 말씀을 떠올렸고 다시한번 수영을 즐기면서 해보기로 다짐하는데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 2016년 브라질 리우 패럴림픽에까지 출전하게 된 ‘첸 홍얀’, 아쉽게도 여자 평형 100m 부분에서 4위를 기록하지만 그녀의 사연을 알게 된 많은 사람들은 결과를 떠나 찬사를 보냈습니다.

이후 2019년 한 수영대회에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의 성적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그녀는 모 회사의 장애인 서비스센터에 다니며 제2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마지막 감동사연입니다. 100명에게 새 생명을 전하고 안타깝게 떠난 천사, 이진주씨의 이야기입니다.

지난 10월22일, 지인들과 식사를 하던 이진주씨는 갑작스럽게 쓰려져 응급실로 급히 이동했으나 뇌사상태에 빠지게 됐습니다.
꽃도 피워보지 못한 20대의 어린나이에 영면에 들어간 그녀는 인체조직 기증으로 100여명에게 새 삶을 선물하고 떠났는데요.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은 10월 27일 ‘이진주씨(29세)가 지난 10월 15일 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에서 인체조직을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다”며 ‘그녀가 남긴 인체조직은 조직 손상으로 장애를 가진 100여명의 환자에게 희망을 줄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강원도 강릉에서 1남1녀 중 장녀로 태어난 이진주씨, 어머니를 일찍 여읜 탓에 일하시느라 바쁘신 아버지를 대신해 동생을 보살피며 성장했고, 그녀를 기억하는 주변인들은 내성적이지만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했는데요.

가족들은 그녀의 마지막이 누군가를 돕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에 인체조직을 기증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진주씨의 아버지는 사고 당일 저녁 8시쯤 전화 한통을 받았습니다. 다름아닌 진주씨의 친구였는데 ‘아버지 지금 진주가 쓰져서 큰일이 났다.’라는 말을 전했고, 이에 놀란 아버지는 한걸음에 병원 중환자실로 달려갔는데요.
‘먼저 발부터 만졌다’는 아버지는 ‘회복이 어려우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료진의 이야기를 듣고 가까스로 정신을 추스린뒤 뇌사판정을 받은 자신의 딸이 항상 주변의 어려운 사람을 보면 먼저 다가가 도움을 줬던 기억을 떠올리며 장기기증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딸을 생각하며 아버지는 “엄청 건강한 애였어요. 굉장히 내성적이지만 자기 친구들끼리는 활발하게 지냈다고 하더라고요. 아버지가 멀리 일하러 가면 조그만 애가 그래요. ‘아빠 옷 따습게 입고 다니라’고..”라며 힘겹게 말을 꺼냈습니다.
이어 “어쨋든 저희 딸 인체조직을 이식하고 나서 건강하게 됐으면 (좋겠어요). 그냥 건강하게 살라고, 전에는 많이 아팠잖아요. 그런게 이제 완쾌됐으면 좋겠어요.”라고 딸을 통해 희망을 선물 받은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우리 진주 눈을 누가 가져가서 이 세상을 밝게 볼 수 있으면, 그래도 진주가 보는 세상이 있으니까 제 생각에는 가슴속에 묻었지만 안 죽었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어려운 이를 돕는 것을 좋아하고 따슷한 마음을 품고 살았던 이진주씨, 100여명의 환자들에게 새 삶과 희망을 안겨준 그녀를 오랫동안 기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