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딸 다시만날 그날까지’ 일찍 떠난 딸을 그리워하며 쓴 아빠의 편지가 공개되어 먹먹함을 주고 있습니다 지금 확인해보세요

저는 마산에 살고 있는 28살이고 아기 아빠였던 이상훈이라고 합니다. 21살 이른나이에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을 했습니다.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기 때문에  힘든 일이 많았고 서툰 결혼생활에 기쁨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22살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이쁜 딸아이를  얻었습니다. 세상을 다 얻는 곳보다도 더 기뻤습니다. 딸의 이름은 정은입니다. 이정은.. 제 목숨과도 바꿀수 있는  사랑스러운 딸이 있었습니다. 퇴근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가면  저를 기다렸다가 그 고사리 같던 손으로 안마를 해준다며 제 어깨를 토닥거리다가 볼에 뽀뽀하며 잠드는 아이를 보며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20년 2월의 마지막 날 그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오후 3시경  장모님에게서 전화가 왔고 도로를 건너려고 하는 강아지를 잡으려다가 우리 아이가 차에 치였다고 합니다. 저는 하얀 침대 시트 위에 가만히 누워 자는 듯한 딸을 봤고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넓은 세상에 태어나서 겨우 6년 살고간 아이가 너무 가엾습니다. 더 잘해주지 못해서 더 많은 것 해주지 못해서 더 맛있는거 못 먹여서 너무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혼자 가는 길이 외롭진 않았는지 무섭진 않았는지 아빠가 지켜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 한스럽고 원망스럽습니다. 그렇게 아빠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간 우리딸 정은이를 생각하며 편지를 씁니다. 하늘로 간 딸에게 보내는 편지 정은아 내 사랑하는 내 딸! 어젯밤 꿈에 네가 보였단다. 아빠가 우리딸 5살 생일때 선물한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어. 네가 가장 좋아한 옷이었는데 못 가져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우리 아가가 가져갔더구나. 늘 아빠 가슴속에 있던 네가 오늘은 너무나 사무치게 보고 싶어 아빠는 견딜 수가 없구나. 너를 잠시 다른 곳에 맡겨둔 거라고, 너를 잃은게 아니라고 아빠 자신을 다스리며 참았던 고통이 오늘은 한꺼번에 밀려와 가슴을 … Read more

‘아저씨 뭐해요?’ 불의의 사고로 병원신세를 지고있는 내게 문득 다가온 꼬마아이, 퇴원 후 다시 찾은 병원에서 주저 앉아 울고말았습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였습니다. 그날도 평소처럼 집 앞 횡단보도를 걷고 있었죠. 그러다 그만.. 시속 80km로 달려오는 차를 못보고 부딪혀 중상을 입었습니다. 결국 저는 응급실에 실려 갔고 위독한 생명을 기적으로 찾았습니다. 그러나 의식이 돌아오는 동시에 저는 깊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시력을 잃었던 것입니다.. 아무 것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너무 절망했고 결국 아무 일도 할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렸습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기면서 그 아이를 만났습니다. 7살 밖에 안되는 소녀였죠. ”아저씨~ 아저씨는 여기 왜 왔어?” ”꼬마야! 아저씨 귀찮으니까 저리 가서 놀아.” ”아 아저씨 왜 그렇게 눈에 붕대를 감고 있어? 꼭 미이라 같다” ”야! 너 정말 저리 가서 안 놀래!” ”네..” 그 아이와 저는 같은 301호를 쓰게되었습니다. “아저씨 너무 화내지 말구~ 여기 아픈 사람 많아~ 아저씨만 아픈 거 아니자나! 그러니까 나랑 친구해요.네? 알았죠?” “꼬마야 아저씨 혼자 있게 좀 내버려 둘래” “그래 아저씨 난 은지야 오은지! 여긴 친구가 없어서 심심해요 아저씨 근데 나 귀찮아?” 그러면서 아이는 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다음 날, “아저씨 그런데 아저씬 왜 이렇게 한숨만 푹 푹 셔” “은지라고 했니? 너도 하루아침에 세상이 어두워졌다고 생각해봐. 생각만 해도 무섭지 아저씬 너무 무서워서 이렇게 숨을 크게 쉬는 거란다.” “근데 울 엄마가 그랬어여 병도 이쁜 맘먹으면 낫는대여. 며칠 전에 그 침대 쓰던 언니가 하늘나라에 갔어. 엄마는 그 언니는 착한 아이라서 하늘에 별이 된다고 했어. 별이 되어서 어두운 밤에도 사람들을 무섭지 않게 환하게 준다고” “그래 넌 무슨 병 때문에 왔는데?” “음.. 그건 비밀!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곧 나을 거라고 했어. 이젠 1달 뒤면 더 이상 병원 올 필요 없다고” “그래? 다행이구나” “아저씨 그러니까 1달 뒤믄 나 보고 싶어도 못보니까 이렇게 한숨만 쉬고 있지 말고 나랑 놀아조. 응? 아저씨”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나 봅니다. 아이의 한 마디가 나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마치 밝은 태양이 음지를 비추듯 말이죠. 그 후로 그아이와 단짝친구가 되었습니다. “자! 은지야 주사 맞을 시간이야~” “언니 그 주사 30분만 있다가 맞으면 안돼? 나 지금 안맞을래!” “그럼 아저씨랑 결혼 못하지 주사를 맞아야 빨리 커서 아저씨랑 결혼한다~” “칫” 그리고는 엉덩이를 내밀었습니다. 어느새 그 여자아이와 저는 병원에서 소문난 커플이 되었습니다. 아이는 나의 눈이 되어 저녁마다 산책을 했고 7살 꼬마아이가 쓴다고 믿기에는 놀라운 어휘로 주위 사람, 풍경 얘기 등을 들려 주웠습니다. “근데 은지는 꿈이 뭐야?” “음.. 나 아저씨랑 결혼하는 거!” “참나 은지 넌 아저씨가 그렇게 좋아?” “응” “아저씨가 그렇게 잘생겼어?” “음~~ 근데 아저씨 진짜 못생겼다! 꼭 포켓몬스터 괴물 같애!!” 그렇게 심심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즈음.. 헤어짐은 빨리 찾아 왔습니다. 2주후 저는 병원에서 퇴원 했습니다. 아이는 울면서, “아저씨 나 퇴원 할 때 되면 꼭 와야돼 알겠지? 응? 약속!” “그래 약속~” 우는 은지를 볼 수는 없었지만 가녀린 새끼손가락에 고리를 걸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몇주가 지났습니다. 어느 날 전화가 울려댔습니다. … Read more

‘잠시 악기를 건네주시겠어요?’ 바이올린을 사랑하는 한 여성에게 찾아온 뇌종양, 수술 중 그녀를 깨워 연주를 시킨 의사의 행동에 모두 입을 다물지못했습니다

코에 큐브를 꽂은 채로 수술대에 누워 있는 환자가 바이올린을 연주합니다. 이 환자는 현재 ‘뇌종양’ 수술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의사인 아슈칸 박사를 비롯한 신경외과 의료진은 ‘각성 수술’을 통해 환자의 이마부터 드리워진 비닐막 뒤에서 뇌 속 종양을 제거하고 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인 디그마 터너는 2013년에 자신의 뇌 속에 종양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작년 의료진은 종양이 커져가고 있다고 경고하며 터너에게 종양 제거 수술이 필요하다고 알렸습니다. 그러나 바이올린 연주자로서 그녀에게는 수술 결정이 어려웠습니다. 뇌 종양을 제거하면 수술 후에 왼손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어쩌면 바이올린 활을 쥐는 것이 마지막 순간이 될 수도 있는 순간, 의료진은 바이올린이 터너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했습니다. 결국 의사는 고민 끝에 독특한 접근 방식의 수술을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의사는 수술 중에 환자를 깨워 바이올린 연주를 하도록 하는 각성 수술을 시도하기로 결정한것인대요. 각성 수술은 뇌의 중요한 부위를 수술할 때, 환자를 수술 중간에 깨워 환자의 행동과 말 등을 확인하면서 진행하는 수술 방법입니다. 의료진은 수술을 시작하기 전에 2시간 동안 터너의 뇌에서 바이올린과 연관된 활성화되는 영역을 정밀하게 찾아냈습니다. 그 후 환자를 깨워 바이올린 연주를 할 수 있도록 하여 해당 영역의 손상 여부를 확인하며 수술을 진행했습니다. 뇌에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 ‘통증 수용체’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수술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아슈칸 박사는 “종양이 터너의 뇌의 매우 복잡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라며 “게다가 환자가 왼손잡이였기 때문에 뇌의 신경 경로가 훨씬 복잡하여 까다로운 상황이었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 Read more

‘같은 상황이와도 똑같은 선택을 할꺼예요’ 임신 중 한쪽 다리를 잃은 여성이 등산을 하는 이유가 밝혀져 모두를 먹먹하게 만들고있습니다

뱃속의 아이를 살리기 위해 다리를 포기한 엄마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공개됐습니다. 영국 매체인 ‘미러’는 베키 터너의 사연을 소개했는데, 그녀는 임신 중 발생한 ‘선천적 척추갈림증’으로 인해 뱃속 아이를 포기하거나 다리를 절단해야만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베키 터너는 “임신 18주가 되었을 때 발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때 치료와 아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라고 지난 경험을 전했습니다. 척추갈림증은 하반신의 근육과 감각을 조절하는 척수와 신경이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해 신체 기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선천적인 기형입니다. 척추갈림증을 극복하기 위해 약물 치료가 필요했지만, 베키는 자신의 아이를 위해 치료를 포기했습니다. 그녀는 “어떻게 해도 피할 수 없는 일이었고, 아이를 위해 몇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하는 것보다 안전하게 출산하는 것이 더 좋았다”고 말했는대요. 다행히 임신 기간 동안 추가 합병증은 없었으며, 베키는 아이를 건강하게 출산한 후 다리 절단 수술을 받았습니다. 베키는 “절단 후 남편이 나와 아이를 돌보는 것은 물론 집안일까지 대신하기 위해 10개월 동안 무급 휴가를 받았다”며 “수술 직후가 가장 힘들었다”고 솔직히 털어놨죠. 또한 “내가 제대로 된 엄마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휠체어에 갇혔고, 엄마로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 Read more

‘세상에 홀로 남은 기분아시나요?’ 문득 찾아온 미칠듯한 외로움에 누구라도 붙잡고 말을하고싶었고 결국 공중전화 찾아 무작정 전화를 걸었고 결국 전..

눈이 많이 내린 겨울, 밤거리를 한 청년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땅만 보고 걷다가 잠시 추위를 피하기 위해 공중전화 부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순간 공중전화 부스 유리창에 붙어있는 ‘전화국 24시간 희망의 상담서비스 무료. 129번’이라는 스티커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잠시 망설이던 청년은 수화기를 들고 번호를 눌렀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라며 수화기 너머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저… 하고 싶은 말좀 해도 되겠습니까? 지금 제 주변에는 저의 말을 들어 줄 사람이 한사람도 없어요. 저는 잘못 한게 없는데, 모두 잃었어요. 직장도 가족도 친구도 이제 저도 잃으려 하고 있어요. 저에겐 내일이 없습니다. 그래도 누구랑 한번은 말하고 싶었어요. 감사했었습니다. 이제 전화를 끊어야 겠어요. 다른 사람이 위해서” “여보세요? 끊지 마세요. 제가 책을 한 권을 권해 드릴께요” “저는 지금 책 필요없습니다. 죽을려고 하는 사람이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 “그러다면 제가 책을 읽어드리면 안될까요? 이 내용을 들어보시고 생각해도 늦지 않을거 같은데요? ‘내일이 아름다운 이유’라는 우화예요. 9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첫번째 이야기를 들려드릴께요. 뇌성마비 원숭이 시몽과 눈먼타조 비비가 펼치는 이야기예요. 햇살이 따뜻한 어느 오후였다. 원숭이 시몽은 숲속 빈터에 화구들을 펼쳐놓고..” 상담사는 차분한 목소리로 한자 한자 책을 읽어내려 갔습니다. 청년은 수화기 너머 읽어주는 음성을 들으며 눈이 펑펑 내리고 있는 전화부스 바깥을 쳐다보았습니다. 다소 부자연스러운 목소리에 ‘읽어 준다더니 뭐야 녹음테이프를 들려주는건가’라는 생각과 확인하고 싶다는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생각을 하느라 잘 듣지 못하였는데 처음부터 다시 읽어주시면 안될까요..” “아 네. 알겠습니다. 첫번째 이야기입니다. 햇살이 따뜻한 오후였다. 원숭이 시몽은 숲속….” 청년은 그때부터 읽어주는 책을 쫑긋 듣고 있었습니다. 어주는 목소리도 따뜻함이 묻어있었습니다. 자정을 넘어서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처음과 같이 또박또박한 음성으로 정성스럽게 읽어주었습니다. 마침내 마지막 이야기를 읽어려고 하니 청년이 말하였습니다. “마지막 이야기는 조금 쉬었다 읽어 주시면 안될까요?” … Read more

할머니 한분을 태우고 목적지로 향하던 도중, 갑자기 말을걸고 꺼낸 ‘한마디’에 그자리에 차를 멈추고 하염없이 울고 말았습니다

그날도 전 콜택시 요청을 받고 여느때와 같이 해당 주소로 차를 몰고 갔습니다. 도착해서 경적을 울렸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죠. 또 한번 경적을 울렸지만 여전히 아무런 기척이 없었습니다. 이 손님이 그날 교대 전 마지막 콜이었기에 저는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얼른 포기하고 차를 돌릴까도 생각했죠. 하지만 저는 일단 기다려 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초인종을 누르자, 노쇠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손님이 나오기 까지 시간이 꽤 걸렸는대.. 마침내 문이 열렸고 작고 연로하신 할머니 한 분이 문가에 서 계셨죠. 손에는 작은 여행 가방을 들고 계셨습니다. 당시 문이 열린 틈으로 집안이 살짝 보였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집 안에는 사람의 흔적이 싹 지워진 듯했죠. 모든 가구는 천으로 덮여 있었고 휑한 벽에는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았습니다. 단지 사진과 기념품이 가득 찬 상자 하나만 구석에 놓여 있었습니다. “기사 양반 제 여행 가방 좀 차로 옮겨 줄래요? 부탁해요” 전 할머니의 요청대로 가방을 받아 들고 트렁크에 실었습니다. 할머니가 “도와줘서 고맙다”는 말씀에 저는 “별말씀을요. 모든 승객을 제 어머니처럼 대해야죠”라고 대답했습니다. 할머니는 미소 띤 얼굴로 “굉장히 친절하시네요”라고 말씀하셨는대요. 택시에 탄 뒤, 할머니는 목적지의 주소를 알려주며 시내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가지 말아 달라고 하셨습니다. “음.. 그럼 목적지까지 가는 지름길이 없는데요? 시내를 통과하지 않으면 많이 돌아가야 합니다” 저는 솔직하게 말씀드렸습니다. 할머니는 저만 괜찮다면 급할 게 없으니 돌아가도 된다고 말씀하시면서 한마디를 덧붙이셨죠. “요양원에 들어가는 길이랍니다. 사람들이 마지막에 죽으러 가는곳 말이죠” 할머니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이어가셨습니다. “의사가 말하길 제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하네요. 자식들에게 짐되기 싫기도 하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재빨리 미터기를 껐습니다. “어디 가보고 싶은데 있으세요?” 그 후 두 시간 동안 할머니와 함께 저는 시내 곳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이제는 고인이 된 남편과 젊었을 적 함께 살았던 집을 비롯해 소싯적 다녔던 댄스 스튜디오를 보여주기도 하셨죠. 어느 골목에 다다르자 천천히 가 달라고 말씀하신 할머니는 호기심 가득한 어린아이처럼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셨습니다. 그러다 “이제 피곤하네요. 제 … Read more

‘용서해야할까요..’ 저와 아이를 놔두고 공부하러 지방에 내려간 남편은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난다는 말을 했고 결국 그자리에 주저앉아 눈물만흘렸습니다

내 삶이 비뚤어진 운명을 향하여 걷기 시작하던 그때.. 15살이였던 저는 딸이 귀하던 우리 집안에 막내였고 공주님처럼 남부러울것 없는 생활을 했습니다. 교육자이셨던 아버지는 개인 교습을 시켜주신다 하셨고 곧 바로 전라도에서 유학을 온 대학생 오빠에게 과외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춘기였던 나에게 대학생이란 신분의 오빠를 처음 보는 순간 저의 시선을 뺏기에 충분했습니다. 오빠는 집안 형편으로 야간에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항상 통금에 쫓겨 다녔기에 그는 저에게 우상으로 다가왔습니다. 수수한 옷차림에 따뜻한 눈빛을 가진 그에게 저는 한순간에 반해 벼렸고 그 역시 저를 친동생처럼 잘 해주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친해졌고 그 해가 지날 무렵 저는 그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입대 영장이 나왔고 그렇게 훌쩍 군대로 오빠는 가버렸고  저는 전라도 신안이라는 곳에 배가 부른 채로 찾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린 나에게 아무것도 가진것없이 임신하였고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날 시댁에서 좋아할리 없었습니다. 저는 만삭이 되고 나서도 가족들의 빨래며 청소, 집안일을 해야 했고 시할머니의 중풍을 수발을 감당하면 살았습니다. 매일밤 눈물로 보내고 고달픔에 지쳐 한순간의 실수로 내 인생이 이렇게 무너짐을 가족과의 생이별을 한탄하면서도 저의 첫사랑인 그를 위한 길이라 생각하며 모진 시집살이를 견뎌 냈습니다. 시아버지의 새참을 가지고 나가던 중 갑작스러운 진통이 왔으며 저는 눈물로 쓸쓸히 그와 나의 사랑의 결정체 혁이를 낳았습니다. 아홉달도 채우지 못한 미숙아를 낳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가 제대를 하고 다시 부산에서 유학 생활을 했지만 저는 시할머니 병수 발로 혼자 전라도에 남아 시집살이를 했고 그나마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확인하던 중 그에게서 편지가 끊겼습니다. 마침 아버지의 환갑 잔치가 있어 가족과의 화해와 시할머니의 치료비로 인한 엄청난 빚을 감당하기 어려워 도움을 얻어야겠단 생각에 부산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자취하던 곳은 말끔하게 정리된 여자의 소품들이 가지런히 있었습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저는 그의 학교로가서 그를 정신없이 찾아다녔습니다. 그는 저를 보면서도 아무 말 없이 다방으로 가자는 손짓을 했고 저는 아이를 등에 업고 그와 그 여자의 뒤를 묵묵히 따라갔습니다. 아이는 무얼 아는지 등에서 계속 울었습니다. 한참 후 그는, “내 첫 사랑이야. 유학생활하면서 힘들어할 때 옆에서 보살펴 준 고마운 여자야. 이 사람과 함께 살고 싶어!” 저는 그를 바라만 보고 있을 뿐 너무 충격적이고 너무 뻔뻔스러운 그의 표정에서 목이메여 눈물조차 흘릴수 없었고 명치만 무겁게 눌릴뿐이였습니다. 그녀는 대학을 나오고 직장도 있는 27살 성숙한 모습의 여인이였고 저는 중학교 중퇴에 아무런 능력없는 20살 철부지 아내에 불과 했기에 도저히 그녀를 버리란 말을 할수 없었습니다. 나와 우리 아이를 포기한 것이었기에 그렇게 사랑이라는  거짓의 탈을 쓰고 있는 그의 곁을 떠날때 이미 둘째를 임신한 몸이었고 한달도 되지 않아 운이를 눈물로 맞이하며 가슴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큰 … Read more

‘왜 이제야 연락주셨어요’ 매번 찾는 단골손님은 연락이 끊겼고 3년이 지난 어느날 연락온 손님의 ‘한마디’에 바로 달려가고 말았습니다

언뜻 한번 보고 스쳐 지나가는 인연은 꽤나 많습니다. 식당 주인과 손님 그리고 택시기사와 승객 등이 있죠. 오늘의 믿기 힘든 놀라운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 택시기사와 단골손님입니다. 택시기사님은 단골손님 중 한분이 계셨는데 한동안 연락이 없다가 문자가 왔다고 하는대요.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걸었지만 손님은 좀처럼 말을 잇지 못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문자가 와서 연락이 안됐던 3년 동안 암 수술을 12번 받은 자신의 사정을 허심탄회하게 털어 놓았는대요. “도움이 필요한데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단골손님의 말에 택시기사님은 고민하지도 않고 “어떤 일이라도 좋다. 다 도와드리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사연은 지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권오길 택시 기사님이 자신이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손님에 대해 말했던것이었는대요. 권오길 씨는 “그분이 병원을 가야 하는데 효과가 센 약을 드시니까 아침에 못 일어났다”며 “시간에 맞춰 일어나라고 모닝콜을 해준 적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또한 “한번은 일요일 아침에 문자가 와서 화장실 변기가 막혔다며 업체를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더라. 알아본 곳들이 전부 많은 돈을 요구했다”고 말했는대요. 이에 권오길 씨는 단골손님 집에 직접 찾아가서 문제를 해결해줬다고 말하며 그 일이 운전하면서 가장 뿌듯했다고 전했습니다. … Read more

‘엄마아빠는 도대체 뭐하시는거니?!!’ 맨앞줄에 홀로이 앉아있는 학생의 생활기록부를 우연히 보게됐고 그 이후로 전 차별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K라는 초등학교 여교사가 있었다. 개학 날 담임을 맡은 5학년 반 아이들 앞에 선 그녀는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했다. 아이들을 둘러보고 “모두를 똑같이 사랑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것도 잠시, 첫 줄에 구부정하니 앉아 있는 작은 남자 아이 민호가 있는 이상 그것은 불가능했다. K 선생은 그 전부터 민호를 지켜보며 민호가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옷도 단정치 못하며 잘 씻지도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때로는 민호를 보면 기분이 불쾌할 때도 있었다. 끝내는 민호가 낸 시험지에 큰 X표시를 하고 위에 커다란 빵점를 써넣는 것이 즐겁기까지 한 지경에 이르렀다. K 선생님이 있던 학교에서는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의 지난 생활기록부를 다 보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민호것을 마지막으로 미뤄 두었다. 며칠이 지난 마지막으로 놔뒀던 민호의 생활기록부를 보고는 깜짝 놀랄수 밖에 없었다. 민호의 1학년 담임선생님은 이렇게 썼다. “잘 웃고 밝은 아이임. 일을 깔끔하게 잘 마무리하고 예절이 바름. 함께 있으면 즐거운 아이임.” 2학년 담임선생님은 이렇게 썼다. “반 친구들이 좋아하는 훌륭한 학생임. 어머니가 불치병을 앓고 있음. 가정생활이 어려울 것으로 보임.” 3학년 담임선생님은 이렇게 썼다.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마음 고생을 많이 함. 최선을 다하지만 아버지가 별로 관심이 없음. 어떤 조치가 없으면 곧 가정생활이 학교 생활에 까지 영향을 미칠 것임.” 민호의 4학년 담임선생님은 이렇게 썼다. “내성적이고 학교에 관심이 없음. 친구가 많지 않고 수업시간에 잠을 자기도 함.” 여기까지 읽은 선생은 비로소 문제를 깨달았고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반 아이들이 화려한 종이와 예쁜 리본으로 포장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가져왔는데 민호의 선물만 식료품 봉투의 두꺼운 갈색 종이로 어설프게 포장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더욱 부끄러워졌다. K선생은 애써 다른 선물을 제쳐두고 민호의 선물부터 포장을 뜯었다. 알이 몇 개 빠진 가짜 다이아몬드 팔찌와 1/4만 차 있는 향수병이 나오자 아이들 몇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녀가 팔찌를 차면서 정말 예쁘다며 감탄하고 향수를 손목에 조금 뿌리자 아이들의 웃음이 잦아들었다. 민호는 그날 방과 후에 남아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오늘 꼭 우리 엄마에게서 나던 향기가 났어요.” 그녀는 아이들이 돌아간 후 한시간을 울었다. 바로 그날 그녀는 읽기, 쓰기, 국어, 수학 가르치기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진정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K선생은 … Read more

‘여보 이거 받아’ 82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하는 ‘이것’이 알려지자 모두 뭉클함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중국 산둥성 린이 지역에 사는 한 노부부가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매년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를 맞이해 할머니에게 꽃다발을 선물한다고 하는대요. 평소에서 종종 할머니에게 꽃다발을 선물한다는 할아버지는 어느날 홀로 장을 보러 나섰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꽃집에 들러 아내가 좋아하는 핑크 장미로 꽃다발을 한손에 듭니다. 집으로 돌아온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꽃다발을 건네는대요. 할머니는 향기로운 꽃냄새를 맡고 소녀처럼 수줍게 미소를 짓습니다. 이들을 지켜보던 손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모습을 영상에 담아 SNS를 통해 공개했는대요. 손녀의 설명에 따르면 할아버지는 15살 때 할머니를 처음 만났고 첫눈에 반해 결혼까지 하게 됐다고 전했습니다. 영상 속 할아버지는 지금 97세이며 82년간 할머니에게 매일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있다고 하는대요. 이러한 할아버지 덕분에 할머니는 늘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고 손녀는 말했습니다. 이러한 사연이 공개되자 누리꾼들은 “변치않는 진정한 사랑”, “보는 내가 흐뭇하네”, “모쏠은 이해못함”, “사랑하고 싶다..” 등과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